▲쌍용차 정리해고 무효소송 최종 선고를 열흘 여 앞 둔 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와 범국민대책위 관계자들이 '무효판결'을 바라며 2천배를 하고 있다.
이희훈
[①외부감사인과 부실 감사를 옹호하는 감독기관] 정리해고 소송은 통상적으로 재무제표를 비롯한 회계장부 자체가 적정하게 작성되었음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정리해고의 요건을 다툰다. 그러나 쌍용차 사건에서는 재무제표(손익계산서)상의 유형자산 손상차손(유형 자산의 회수가능액이 장부가액보다 현저하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그 차액을 손실로 반영하는 것)이 적정한지부터가 논란이 되었다.
외부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 2심 감정인, 금융감독원, 심지어 대법원에서조차 쌍용차 소송 대리인들간의 설명이 불일치하고 모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성이 존재하므로 다소 보수적으로 예상 매출 수량 추정이 이루어졌더라도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유형자산손상차손이 과대 계상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대법원의 덮어버리기 능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1980년대 이후 기업의 자유수임제(기업이 외부 감사인을 선택하게 하는 제도)가 실시되면서 외부감사인의 독립성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는 허위(내지 부실) 감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실제 회계 부정에 기초하여 구조조정이 이루어진 사업장은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이라도 제대로 감독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쌍용차 사건에서 금감원은 유형자산손상차손 계상이 적정하다고 보았으나, 금감원과 쌍용차, 안진회계법인의 주장은 "문제없다"는 결론만 같을 뿐 그 전제가 서로 모순되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금감원에 자료를 요청하면 '회사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매번 거절한다. 금감원이 부실감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숫자 하나로 수천 개의 일자리를 좌우하는 기업 회계 투명성과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적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②유동성 위기, 해결할 수 있는데 위기다?] 대법원은 당시 쌍용차가 유동성 위기도 있다고 보았다. 당시 쌍용차가 담보를 활용하여 금융권으로부터 신규자금을 대출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그 근거로 산업은행의 대출 거절을 들고 있다. 그러나 쌍용차 재무제표 상, 2008년 12월 31일 기준 곧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영업 관련 유동자산이, 지급해야 할 영업 관련 유동부채보다 1000억 원 이상 많았다고 명백히 드러나 있다.
또한 쌍용차는 국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아닌 다른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대출이나 사채 및 기업어음발행, 자산매각 후 리스 등 민간자본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즉 유동성 위기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설사 일부 인정한다 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쌍용차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쌍용차가 유동성 위기를 회피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았다. 해결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위기라고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 상태만을 보고 판단한 것이다.
[③권한은 없이 책임만 부담하는 노동자] 나아가 대법원은 쌍용차의 경영위기가 상당기간 신규설비 및 기술개발에 투자하지 않는 데서 비롯한 계속적·구조적 위기라고 보았다. 그러나 쌍용차는 2001년부터 2008년까지 2005년과 2008년을 제외하고는 영업이익을 달성하고 있었고, 신차종 개발도 예정하고 있는 등 상당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대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에는 부당한 점이 많다.
허나 대법원 판결의 사실관계를 전제로 한다면, 대법원은 2005년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이후 기술 유출에만 골몰하고 기술개발과 투자를 하지 않아 경영 위기가 왔다고 보면서도 '정리해고는 유효하다'는 취지로 판시한 것이다. 결국 경영상 위기는 대주주(상하이차)와 회사 경영진에게 있지만 그 책임은 노동자가 부담하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정리해고 제도의 실상이다. 즉 부실 경영에 따른 책임을 가장 많이 부담하는 자는 경영자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것.
그러나 노동자는 평상시(물론 정리해고 시에도)에 경영에 대해 참여할 권한이 거의 없다. 심지어 대법원은 정리해고를 이유로 파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는 수백 억의 손해배상에 직면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이 얼마나 지극한 모순인가. 권한과 책임의 일치는 법률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운영의 기본 원칙이고 상식이다. 그런데 정리해고 문제에서 노동자는 권한없이 책임만 지라고 한다.
[④인력 구조조정 규모의 부당성, 노동자가 입증해라?] 대법원은 또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으나 잉여 인력의 규모는 경영 판단에 속하는 사항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하라고 한다(2013년 동서공업 사업장의 정리해고 사건에서 판시한 사항을 그대로 원용하였다). 이는 결국 인력 구조조정 규모가 부당함을 노동자가 입증하라는 것과 같다.
이번에도 대법원은 쌍용차가 모답스 기법, 레이아웃 검증 결과 등을 활용하여 적정한 인력 규모를 산출하여 정리해고했다고만 할 뿐,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는데도 정당하다고 보았다. 더군다나 대법원 쟁송과정에서 쌍용차 스스로 주장을 변경하여 2교대→1교대로 교대 조를 감축한 것이 인력 구조조정 규모 산정의 주요 근거였다고 했음에도 대법원은 이에 대해 전혀 판단하지 않았다. 이처럼 허술한 판단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에 2646명(전체 직원의 37%, 생산직은 2099명으로서 전체 생산직의 44%)이나 되는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게 문제 없다고 본 것 아니겠는가.
[⑤ 모호한 사측의 해고회피노력] 대법원은 또 쌍용차가 부분휴업, 희망퇴직, 임금 동결 의 해고회피 노력도 다 했다고 보았다. 쌍용차가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했다고 주장한 내용들을 거의 인정해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상적인 경영조치들을 모두 해고회피노력으로 인정하는 것은, 해고를 피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주문하는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반한다.
또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고용관계를 유지하는 해고회피노력이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는 2심의 판단을 부정했다. 구조조정 시기에 이루어지는 희망퇴직이 거의 대부분 본인 의사에 반해 이루어지는 점(즉, 해고)을 고려할 때, 사용자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을 본보기 삼아 고용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더욱 소홀히 하게 될 것이다.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일 수밖에 없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