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기씨가 광화문 광장에서 1인 피켓시위 하고 있다
지창기씨 제공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7개월이 흘렀다. 계절이 세 번 바뀌었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도 미흡하나마 제정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세월호 봉사자들이 남아 천막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왜 지금도 광화문광장을 떠나지 않을까? 주말마다 1인 피켓시위를 진행해 봉사자들이 '노란 배모자 선장'이라 부르는 지창기씨를 지난 19일 서울 홍익대학교 근처 음식점에서 만났다. 그에게 시위를 계속하는 이유를 들었다. 다음은 지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세월호 참사 이후 시간을 어떻게 보냈어요?"세월호 참사 이후 제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졌어요. 촛불집회에 지속적으로 참가했어요. 집회에 참가한 주말엔 그나마 잠을 편히 잤지만, 평일에는 두 시간 이상 잘 수 없었어요. 관련 기사와 영상을 보며 밤 새우는 일이 많았고, 잠을 청하려 노력해도 눈을 감으면 아이들이 떠올랐어요.
심리치료 하시는 박사의 글을 봤는데 '참사 이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모두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많은 사람이 치료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어요.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서해훼리호,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등 숱한 참사와 사고를 겪으며 자라왔지요. 그때마다 우리는 항상 슬퍼하고 공감했기에 트라우마가 조금씩 누적됐을 거라 생각해요. 현 정부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분들만이 아니라 많은 국민에게 너무 가혹했다고 봅니다."
- 세월호 참사 소식은 어떻게 접하게 되었어요?"그날 아침 9시쯤 침몰 뉴스를 봤어요. 충격적인 소식에 10시까지 뉴스를 보다가 출근도 늦었지요. 곧 지인에게 전원구조가 오보란 소식을 들었어요. 순간, 사고에 대처하는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구조시스템에 대한 경험을 떠올렸어요. 건물 철거 장면 보셨나요? 폭탄을 터뜨려 한 번에 무너뜨리는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그런 무섭고 허무한 느낌이 제 가슴을 내리쳤어요. 슬프고 안타깝게도 '한 명도 살리기 어렵겠다'는 예상을 했어요.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참담하고 참혹했죠."
- 주말에 광화문에서 봉사활동 하시잖아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뭘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제가 명절 빼고는 쉬는 날이 없어요. 진도 팽목항을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지요. 일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관련 기사를 열심히 찾아봤어요. 자원봉사 하시는 서명지기님들과 피켓 시위자들의 활동을 지켜만 봤어요. '무슨 일을 해야 도움이 될까, 내가 꾸준히 함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처음 노란배모자 쓴 사람이 여자분이었는데, 유가족분들이 광화문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1인 시위를 했어요. 그러던 중 박영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이 돼 큰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8월 7일, 1차 여야 합의안 결과를 듣고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박영선 당시 비대위원장 덕에 본격적으로 1인 피켓시위를 시작해 지금까지 왔네요."
"일부의 거친 항의, 웃으며 대처하지만..."- 그동안 어땠나요?"광화문에 처음 나갔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5시간 정도 흥분한 상태로 울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세월호 대책위 관계자가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권 및 기소권의 필요성에 대해 울분을 토로하며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고 일부 언론에 소개됐어요. 그 기자는 제가 세월호 대책위 관계자인 줄 알았나봐요. 피켓을 급하게 만들다보니 대책위 이미지를 그대로 썼거든요.
첫날은 많이 울었지만 다음날부터는 감정 제어가 되기 시작해 눈물 흘리지 않아도 시위가 가능하더라고요. 최근 피켓 시위는 잠시 쉬기로 했어요. 오랜 노숙 농성과 매연으로 심신이 약해진 유가족분들의 건강 관리를 위해 스포츠 마사지를 해드리려는 게 첫째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