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씨
이영광
- 유가족들은 특별법에 대해 '미흡하지만 반대하진 않겠다'고 했는데요. "10월 31일 여야 합의안이 골자여서 이미 통과될 줄 알았어요. 그걸 반대하면 본격적으로 싸움에 돌입해야 하는데, 저희를 지지하는 국민이 다칠 우려도 있었어요. 저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특별법을 원했어요. 이런 목적에 어긋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똑같이 거부하면 안 되겠다. 어차피 통과될 것이고 그렇다면 눈물을 머금고라도 이 상황에서 좀 더 내실을 기할 것이 없을까'를 고민하며 받아들인 거죠. 기자들은 '수용이냐, 거부냐'고 묻는데 그걸 어떻게 단정해 말해요?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고 '너희가 수용했다'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돼죠."
- 이승현군의 아버지인 이호진씨는 "이 특별법은 이 정권에선 진상규명을 안 하겠다는 의미"라고 하셨는데."그렇죠. 진상규명이 아닌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생각하시는 국민이 있어요. '진상규명을 하지 말자는 뜻과 같구나'라고 느끼실 겁니다. 하지만 일단 첫 단추는 채워졌고, 수사나 기소가 진행되겠지요. 물론 저희가 바라는만큼 진상규명이 확실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희가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진상 규명은) 채워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희가 할 일이 많죠."
- 지난 5일 청운동 농성을 76일 만에 접으셨지요. 어떻게 청운동 농성을 시작하셨어요?"청운동 농성은 저희들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자 시작했어요. 대통령께서 한 번이라도 저희를 만나 눈물을 닦아주길 원했죠. (대통령이) '언제든 찾아오면 만나겠다'고 했기 때문에 만나려고 시도했지만 민원실까지 가는 것도 제재했어요. 이 땅엔 세월호 유가족만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아요. 가까운 곳에 있다면 만나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항상 먼 곳으로만 다니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아팠죠."
- 76일이 짧은 시간이 아니잖아요.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요."농성 시작할 때 두려움도 있었어요. 아이들을 잃은 아픔과 몸으로 느껴야하는 고통까지... 말도 아니었죠. 추워질 때 쯤 농성이 시작돼 부모님들이 해낼 수 있을까 했는데, 자식을 잃은 부모의 힘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잖아요. 사람들이 모포도 많이 갖다 주고, 추석 전에는 음식이 넘쳐날 정도로 주변 주민 분이 집에서 만든 음식 가져왔어요. 너무 많이 가져다 주시니까 부모님들이 다 드시질 못했죠. 그걸 안산에 가져 가긴 또 그렇잖아요. 주변에 양로원 등 더 어려우신 분들 많으니까, 나눠 드렸지요."
"웃음도 함부로 흘릴 수 없어"- 비방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차를 농성장 앞에 세우고 손가락질 하면서 지나가는 분도 있었고, 어떤 분들은 저희 유가족이 '얘기하며 웃는다'고 해서 웃음조차 눈치를 봐야 할 정도였죠. '대통령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러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희가 들어오시라고 해서 차근차근 보고, 듣고, 느낀 상황을 얘기하니 눈물 흘리면서 '너무 미안하다'고 하신 분도 있었죠. 저는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어요."
- 대책위 임원을 맞으신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시네요. "처음엔 유가족 중 하나였죠. (임원 일을 하면서) 사실 말 못할 고충이 있어요. 남이 아무리 칭찬해도 제 마음속에 있는 한 가지는 저는 새엄마여서... 할 말도 못 할 때가 있어요. 조금 모진 말도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갈 때가 많죠. 제 나름대로 애써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새엄마가 왜 나서느냐'라는 말이 족쇄가 되기도 하죠. 그래도 제가 이렇게 하는 게 동혁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죽고 없으니 밥을 해줄 수도 없고, 잠자리를 마련해 줄 수도 없고, 용돈을 줄 수도 없잖아요. 동혁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 동혁이가 고 박수현군이 찍은 동영상에 나오잖아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내 동생 어떡하지?'라는 말에 많은 국민이 울었습니다. "동영상을 찍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요. 특히 동혁이는 휴대폰이 없었어요. 휴대폰 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건 제 제안이었기 때문에 사고 후 휴대폰 없앤 걸 많이 후회했어요. 동혁이 아빠 눈치도 보였어요.
수현이가 찍은 동영상에 동혁이가 마치 주인공처럼 많이 나왔잖아요. 원본에는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이 많이 나왔거든요. 그걸 보는 순간, (동혁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전에는 이렇게 나와서 적극적으로 (행동) 하는 것도 생각 안 했는데 영상을 보는 순간 '아이가 뭔가 메시지를 보내는구나.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동혁이가 동생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한 것 같아요."동생을 많이 챙겼어요. 항상 동혁이가 동생에게 양보했어요. 간식이나 용돈을 동생이 가져가도 말을 안 했어요. 동생 안 얄밉냐고 물으면 동생인데 뭐 어떠냐고 했죠. 아이가 죽어가면서도 동생을 생각했다는 건 그만큼 동생과 함께한 시간이 가장 길었기 때문이고, 자기 없이 동생이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했겠지요. 그 상황에서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밖에 없던 아이였어요."
- 동생은 지금 어때요?"집에서 가장 어른스러워요. 오빠 있을 땐 고집 세고, 애기처럼 말썽쟁이였지만 오빠가 그렇게 되고 저희랑 같이 있을 시간이 없는데도 자기 일 잘하고 성적도 그 전에 비해 많이 올랐어요. 평균 20점 가까이. 이것 또한 동혁이가 가면서 동생에게 준 선물이 아닌가 생각해요. 어른스러운 척하는 마음엔 얼마나 아픔이 있겠어요? 저희는 진상 규명 일로 바쁘니 딸에게 미안하죠."
- 수학여행 떠나던 날 어땠나요?"4월 15일 아침에 수업 받고 저녁에 배를 탔어요. 그 전날 대학생인 동혁이 형이 군대에 갔어요. 제가 형 옷이 더 멋있으니 형 옷 입고 가라고 해서 이것저것 입었죠. 제가 동생하고 침대에 누워 있으니 자기도 뽀뽀해달라길래 저는 징그럽다고 수학여행 다녀와서 놀자며 재웠어요. 15일 밤 11시 반 쯤 '밥 잘 먹고 날씨 때문에 출항 못 하다가 (방금) 출항했다'고 전화 와서 아이 아빠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 많이 사귀고 건강히 와라'고 했어요. 나중에 '말 잘 들으라는 말을 괜히 했다'고 아빠가 그랬죠. 하지만 전 아니에요. 부모라면 똑같은 상황이 다시 와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죠."
- 언제 가장 보고 싶으세요."해 저물 때요. 해질 때 쯤 되면 늘 사무실에서 나와 마트 가서 장을 봤어요. 그날 먹을 동혁이 간식하고 찌개 거리를 샀거든요. 오후 10시 15분쯤 동혁이가 왔어요. 그 시간마다 현관문을 보게 되요."
"우리 아이는 4월 16일에 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