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매암은 청매 인오(1548~1623) 스님을 기려 도솔암의 정견 스님이 2년 전에 인법당으로 지었다. 청매암은 함양군 마천면 오도재에 있다. 정견 스님이 혜암 종정을 모시고 지리산에 들어온 때는 1985년이었다. '공부하다 죽어라', 오후불식, 장좌불와 등의 숱한 가르침을 남긴 혜암 종정은 도솔암에서 2년을 머물고 1987년 해인사 원통암으로 돌아갔다. 정견 스님은 도솔암에 계속 남아서 도량을 닦았다.
청매 조사는 서산대사의 제자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산대사를 따라 승병장이 되어 3년 동안 싸워 공을 세웠다. 유명한 십무익송을 지었으며 그림에도 뛰어났다. 광해군 때 왕명으로 벽계 정심, 벽송 지엄, 부용 영관, 서산 휴정, 부휴 선수의 오대 선사들의 영정을 그렸다. 말년에 지리산 연곡사에서 입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원사에는 도솔암을 중건한 청매 조사 승탑이 있다. 마천에서 함양읍으로 넘어가는 재가 오도재인데, 청매 조사가 도를 깨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매 조사가 도솔암에서 수행한 기록은 박여량의 <두류산일록>에서 볼 수 있다. 1610년(광해 2)에 박명부, 정경운 등과 두류산을 유람한 박여량은 9월 4일 옛 제석당 터에서 주위 산과 내의 형세를 가리키며 둘러보았다. "서쪽으로 1백여 리쯤 되는 곳을 바라보니 새로 지은 두 절이 있는데, 무주암 서쪽에 있는 절을 '영원암(靈源庵)'이라 하고, 직령 서쪽에 있는 절을 도솔암(兜率菴)이라 하였다. 도솔암은 승려들이 수행하는 집으로 인오(청매)가 지어 살고 있는 곳이다. 인오는 우리 유가의 글을 세속의 문장으로 여겨, 단지 불경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여러 승려를 위하여 암자 앞에 붉은 깃발을 세워두었고, 발자취가 동구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한다."고 적었다. 또한 "사찰로서 말한다면 금대암, 무주암, 두류암 외에 영원암, 도솔암, 상류암, 대승암 등은 예전에 없었던 절이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도솔암은 당시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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