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서하는 김기춘 비서실장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28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실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남소연
대다수 언론은 답변자료에 대한 검증 없이 "대통령이 사고 발생 후 7시간 동안 7번 지시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그러나 김 의원이 공개한 답변자료는 지난 8월 13일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 새누리당 간사이자 또 다른 친박계인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병)이 공개한 청와대 답변자료의 '재탕'이다.
당시 조 의원은 대통령비서실의 답변서를 공개하면서 "4월 16일에 대통령은 청와대 밖의 외부 행사가 없어 줄곧 청와대에 계시면서 20~30분 간격으로 21회(안보실 서면 3회·유선 7회, 비서실 서면 11회)에 걸쳐 유선 또는 서면 보고를 받고 필요한 지시를 했다"(
http://omn.kr/9smx)고 밝혔다.
이른바 '팩트'(fact)를 중시하는 언론의 시각에서 두 답변자료를 보면, 조원진 공개본은 '사고 당일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김재원 공개본은 '사고 발생후 대통령이 7번 지시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조원진 의원의 자료에서는 21회 보고받고 3회 지시한 것으로 돼 있는 반면에, 김재원 의원의 자료에는 19회 보고받고 7회 지시한 것으로 돼 있다.
보고 회수에서 차이가 나는 까닭은 전자는 4월 16일 하루를 기준으로 했고, 후자는 사고 발생후 7시간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시 회수에서 4회의 차이가 나는 까닭은 전자는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지시한 것을 기준으로 한 반면에, 후자는 대통령이 보고를 받으면서 지시를 한 것까지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오후 3시께 박 대통령이 김장수 안보실장에게 중앙재해대책본부 방문준비를 하라고 지시한 것을 빼곤 전자와 후자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
알다시피 '7시간 의혹'은 일본의 극우매체인 <산케이신문>이 8월 초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증권가 정보 등을 인용해 박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확산되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원진 공개본은 대통령이 사고 당일 '외부인'을 만났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대응한 '물 타기'일 가능성이 크다. 김재원 공개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알리바이'(범죄현장 부재증명)를 제시한 셈이다. 쉽게 말해, 대통령이 '7시간 동안 19번 보고받고 7번 지시'했는데,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항변이다.
친박계 의원들의 박근혜 7시간 알리바이?문제는 청와대의 답변과 친박계 의원들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7시간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야당과 국민들이 '7시간 의혹'에 관심을 갖는 것은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니다. 구조의 '골든 타임'을 참모들의 잘못된 보고와 대통령의 틀린 지시로 허비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청와대와 친박계 의원들은 '대통령이 7시간 동안 19회나 보고받고 7번이나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잘못된 보고와 틀린 지시의 연속이었다. 청와대 답변자료를 보더라도, 대통령비서실은 오후 1시 7분 6회째 서면보고에서 "총 370명 구조, 사망 2"라고 잘못된 보고를 했다.
국가안보실 역시 오후 1시 13분 4회째 유선보고에서 "190명 추가 구조, 현재까지 총 370명 구조"라고 잘못된 보고를 했다. 재난구조를 총괄하는 중앙재해대책본부조차도 오후 2시 브리핑에서 "13시 기준으로 구조자 368명, 사망자 2명"이라고 발표했다.
부실하고 엉뚱하기는 대통령의 지시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10시 15분 김장수 안보실장에게서 유선보고를 받으면서 대통령이 내린 첫 번째 지시는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이미 세월호 선체는 108도로 기울고 90% 이상이 잠긴 상황이었다. 사실상의 '뒷북 지시'였다.
대통령의 세 번째 지시는 10시 30분 해양경찰청장에게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한 것이었다. 이 또한 '뒷북 지시'였다. 그로부터 1분 뒤 세월호는 완전히 뒤집혔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구조가 이뤄진 시각은 10시 21분이었다. 해경특공대(7명)는 대통령 지시가 나오기 전에 목포에서 헬기로 출발했지만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은 세월호 침몰 3분 전인 11시15분이었다. 결과적으로 특공대는 단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했다.
오후 4시 10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가 처음 열렸다. 그런데 '대수비'(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가 아니고 '실수비'(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였다. 오후 3시 30분경 비서실에서 집계 오류를 확인받고 구조인원을 160명으로 정정한 7번째 서면보고를 한지 40분 뒤였다.
300여 명이 죽어가는데 왜 '대면보고'를 한 번도 안받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