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지원 및 서민의 과다채무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국민행복기금이 공식 출범한 2013년 3월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자산관리공사 앞에 국민행복기금을 알리는 대형현수막이 걸려있다.
유성호
인천에 사는 이아무개(34)씨는 홀로 살면서 실직상태가 계속 이어지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버텼다. 매월 내야 하는 월세와 생활비가 부족하여 카드를 쓰고, 카드를 막기 위해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면서 돌려막기가 시작됐고 빚이 늘어나게 되었다. 아홉 군데에 2600여만 원의 빚이 생겼고, 3년 전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게 돼 연체했다. 그동안 다행히 생산직으로 취직이 되어 급여를 180만 원 정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씨에게 그 정도의 월급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월세 44만원(보증금 50만 원)에 생활비를 비롯해 시골에 계신 연로하신 부모님의 생활비도 이씨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을 즈음 이씨는 '국민행복기금' 출범 소식을 들었고 '이제야 빚을 갚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채무 2600만 원의 50%를 감면해주고 나머지를 10년 동안 분할 상환하게 해준다면, 충분히 갚아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국민행복기금을 향한 이씨의 기대가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국민행복기금은 이씨가 갖고 있는 9군데의 채무 중 6군데의 채무 2070만 원만 매입했다. 그리고 50%까지 감면된다고 했던 것도 40% 감면에 그쳤다. 결국 이씨가 받아든 내용은 2070만 원의 40%인 1236만 원을 10년 동안 매달 10만 3000원 씩 갚는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국민행복기금에서 제외된 채무들이 문제였다. 그 중 대부업체 한 군데와 신용보증재단 채무는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을 통해 원금 300만 원(이자까지 1000만 원)을 매월 5만 원씩 5년 동안 갚기로 했다. 그러나 나머지 한 군데 J 대부업체는 국민행복기금에서도 제외되었고 신용회복위원회의 협약기관도 아니어서, 급여 압류 등 법적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독촉장을 보내고 추심 전화를 하며 이씨를 괴롭히고 있다.
이씨는 여기저기 나누어서 갚아야 하는 채무조정제도와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채무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 채무를 다 합하여 조정할 수 있는 법원의 개인회생제도를 고려하고 있다.
기금 18조 원 약속하곤 실제론 1조8000억 원만2013년 3월 출범한 국민행복기금, 과연 국민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줬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최초 공약 발표 당시, 18조 원 규모로 국민행복기금을 설치하겠다며 50~70%의 감면율을 제시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가 지난 3월 27일 발표한 '국민행복기금 출범 1주년 성과'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민행복기금은 1조8천억 원 규모로 최초 공약한 18조 원의 10%에 그쳤다. 따라서 국민행복기금에 매입되지 못한 채권이 많고 채무감면율도 30~70%로 줄어들었다.
그러다보니 국민행복기금에서 인수하지 못한 채권 때문에 사례 속 이씨처럼 또 다른 제도를 이용해야 하거나, 계속 독촉을 받거나, 급여 압류·유체동산 압류 등을 당하게 된다. 이 때문에 모두 조정되지 않고 일부만을 조정해주는 것이라면, 아예 빚 갚는 것을 포기하거나 파산이나 개인회생을 신청하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거기다 채무조정 지원자의 평균 연체기간은 6년 2개월, 1인당 총 채무원금은 평균 1108만 원(2천만 원 미만인 대상자가 84% 차지), 1인당 연평균 소득은 456만 원이다. 빚을 갚고 싶어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월 평균 소득이 38만 원이어서 생활비조차 모자른 사회적 취약계층들에게 빚을 갚으라는 것은 시쳇말로 '삥을 뜯는' 야만적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