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캐릭아레데 다리 앞에서 상주하고 계시는 아저씨. 다리는 안전상의 이유로 한 번에 10명 이상 건널 수 없기 때문에 인원수를 제한해서 건너게 한다.
(아래) 다리 앞에서 건너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고 있던 모습. 짧아보이는 다리였지만 결코 짧지 않은 순간이었다.
김현지
건너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깨달음떨어질 확률도 거의 없는 그 다리가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 아마 다리를 건너는 자체가 무서웠던 것이 아니라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 때문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높은 곳에 다리가 있으니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 다리 밑에는 거친 파도가 불고 있고 행여라도 내가 떨어지면 저 무서운 파도가 나를 집어삼킬 수 있다는 생각, 저 파도 밑으로 떨어지면 나는순식간에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
그렇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상상하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인생도 그런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나?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온갖 변수를 미리 떠올리며 얼마나 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타협하고 포기했던가...
여행지에서 만난 자연은 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또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내가 이 곳에 오지 않았다면, 이 다리를 건너지 않았다면 나는 무엇이 나를 두렵게 만드는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일랜드의 드넓은 자연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우물 속에 갇힌 채 과거의 모습을 반성하지 못하고 옹졸하고 편협한 내 시각을 버리지 못했으리라.
나는 그렇게 무사히 다리를 건넜고 다리 너머에서 또 한 번의 멋진 풍경을 감상했다. 이 다리를 건너지 않았다면 절대 볼 수 없었던 꽃, 풀들과 바다의 모습에 또 한 번 감탄을 하며 그렇게 여행을 계속했다. 비록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다리를 한 번 더 건너야 한다는 부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처음 공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한 마음으로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시간 남짓의 여행은 내게 작은 희망을 준 시간이었다. 적은 입장료를 내고 더 큰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던 시간, 다음에 이 곳에 또 오게 된다면 그때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감 있게 내 발을 내딛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