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호 판사는 '소년범의 대부'로 불린다. 하지만 '호통판사' 혹은 '천10호'로 불릴 정도로 엄한 판사이기도 하다.
천종호
"한국이 잘사는 것 같지만 우리 아이들(보호소년)은 몹시 배고파한다. 2010년 송년회 때, 아이들에게 삼겹살을 사주었는데 50명이 207인분을 먹고도 모자라 밥을 3~4그릇 먹는 걸 보고 놀랐다. 배가 고프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정신적 허기가 심하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처벌보다는 따뜻한 말이다. 아이들의 죄만 보지 말고, 아이들의 가슴 아픈 사정을 들어주고 다독거려주면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소년범의 대부' 천종호(50)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의 부탁이다. 소년재판만 5년째 맡고 있는 천 판사는 처벌과 격리, 낙인과 비난으로는 비행청소년 문제를 풀 수 없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이 천종호 판사를 '아빠'라 부르는 것은 자신들의 아픔을 헤아려주고 감싸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고기를 사주고 용돈을 주느라 청빈한 부장판사의 주머니는 더 가벼워지지만 마음만 행복하다.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사는 한 소년범. 그 아이는 죄를 청산하고 나오겠다며 소년원에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천 판사는 그 요청을 가슴 아프게 들어주면서 "소년원에서 나오면 연락하라"고 말하며 소년과 할아버지를 위로했다. 그러자 위로받은 적이 없었던 소년과 할아버지가 눈물을 쏟았고, 법정은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 소년원에 간 소년이 감사편지를 보내오자 천 판사는 아이에게 자신의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와 용돈을 보내주었다.
전국의 소년원 아이들은 물론이고 성인범들도 천종호 판사의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를 읽고 편지를 보내온다. 민지는 꽃 편지를 다섯 번이나 보냈다. 민지는 2013년 5월 천 판사에게 가장 무거운 10호 처분(6개월 이상 2년 이내 장기 소년원 송치)을 받고 소년원에 넘겨졌다. 소녀는 천 판사를 처음엔 원망했지만 천 판사가 책을 선물하고 소년원까지 찾아와주자 아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여기서 아이들끼리 어떤 판사님이 10호 처분을 했는지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하는 거 같아요. 판사님은 저에게 자랑스러운 존재예요~ 아이들에게 제 판사님은 천종호 판사님이라 하면 모두들 하나 같이 부러워해요. 그만큼 인기쟁이란 거겠죠? ㅎㅎ 아무튼, 판사님 잘 지내세요. 우리가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빵, 제과, 검정고시까지 다 따고 찾아갈 테니 따듯하게 맞아주세요. 제가 기도할 때마다 판사님 기도도 빠지지 않고 해드릴게요.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2014. 3. 31.민지는 천 판사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회복되고 있다. 거친 욕을 하던 입에선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라는 고운 말이 나온다. 가장 큰 소득은 가족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민지는 편지에서 "(소년원에) 보내주셔서 제일 감사한 것이 있다면 친구보다 가족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안 것이고, 꿈이라는 것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민지가 천 판사의 책을 읽고 쓴 '시간은 흐른다'라는 제목의 시는 소년원 백일장 대회에서 우수작으로 뽑혔다.
오늘도 한 아이는떨리는 마음으로재판에 참석했다지난날의 후회 그칠 줄 모르는 눈물진심어린 고백을 눈물로 말한다그걸 아는지 모르는지오늘도 시간은 흐른다오늘도 부모님은찢어지는 마음으로 재판에 참석했다밀려오는 후회 깊어지는 한숨지난날을 가슴에 묻고 고개를 떨군다그걸 아는지 모르는지오늘도 시간은 흐른다
오늘도 판사님은안타까운 마음으로재판장에 섰다때로는 호통으로 때로는 다정하게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어김없이 달린다그걸 아는지 모르는지오늘도 시간은 흐른다그 아이들은 왜 소년범이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