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1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세워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DDP는 자하 하디드의 3차원 설계로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6만2천692㎡ 부지에 총면적 8만6천574㎡, 최고높이 29m, 지하 3층과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졌다.
이희훈
그로부터 몇 년 후 충칭(重慶) 메이콴 빌딩이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을 베낀 것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충칭에서 베낀 건물이 먼 나라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베이징에 짓고 있는 39층짜리 '왕징 소호'였다. 자하 하디드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세계적인 건축가로 중국에서도 많이 소개되었다.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도 그녀의 작품이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볼 수 있듯이, 유선형의 비정형적인 형태를 구사하는 그녀의 디자인은 기존 건축이 가진 고체의 물성이 해체되고 촉감적인 느낌마저 준다. 그만큼 누가 설계한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디자인이다. 그렇게 눈에 확 튀는 건축가의 작품을, 그것도 자국의 베이징에 곧 세워질 건물을 베꼈다. 베낀 충칭 회사의 배포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허가해준 충칭시도 대단하다. 해당 건축회사는 강력하게 부인하며 오리발을 내밀다가, 나중에야 "베낀 게 아니라 능가하고 싶었다"는 변명을 했단다.
충칭의 짝퉁설계가 한국 언론에 나왔을 때, 기사마다 '짝퉁왕국', '창의력 부재'란 말이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만약 내가 중국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했더라도 10년 전이었다면, 나는 그 기사만으로 오래 전에 들었던 세계의 공장 이미지를 떠올리며 중국의 현대 건축은 죄다 짝퉁이려니 하는 선입견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활하면서 본 중국 건축의 흐름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설계실의 학생들이 그렇듯이, 건축계도 뒤에서 남의 것을 베끼는 그룹, 앞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그룹, 그 중간쯤에서 현실의 속도를 맞추는 그룹이 있다.
각 그룹들이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건축문화 수준이 나온다. 중국의 경우 최소한 베이징 올림픽 이후부터 그 비율 구성이 제법 달라지고 있다. 중국에서 불쑥불쑥 세워지는 새 건물들을 볼 때마다, 독일이 통일된 후에 건축가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을 한 도시에서 보려면 베를린으로 가라! 이제는 그 말에서 도시 대신 국가, 베를린 대신 중국을 넣으면 딱 맞다.
많은 국가들이 경기침체로 건설 경기가 엉망인데도 중국은 어딜 가든 공사현장으로 시끌벅적하다. 엄청난 자본력에다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를 알아보는 개발회사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국 건축가들을 중국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 건축가의 작품을 두고 전통 단절과 지역성 파괴라고 비판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건축이라며 환영을 한다. 한쪽에서는 베이징 서민들의 삶터인 사합원과 후통을 몰아낸 자리에 외국의 건축가들이 대규모 주상복합건물을 디자인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젊은 중국인 건축가들이 전통 공간을 현대적으로 살려낼 디자인을 내놓는다.
그렇게 도시개발과 건축에 대한 다양한 논쟁과 대안이 보글보글 일어나는 과정이 학생들에겐 의미가 있다. 거기에 경제력과 과감한 추진 주체, 무엇보다 건축의 내수시장이 넓어서 중국의 건축학과 학생들은 볼거리, 들을 거리, 할 거리가 많아진다. 그러니 기성세대와 다른 건축 환경에서 성장하는 그들의 10년 후는 분명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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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좋다. 길이 없지만,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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