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인상안 보고하는 최경환-문형표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담뱃값 인상안을 비롯한 종합금연대책을 보고하고 있다.
남소연
정부는 2000원 인상안이 국민의 건강을 위한 조치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성인 남성 흡연율 44%를 2020년까지 29%까지 끌어내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흡연율은 자의적인 통계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고, 4500원 정도의 담뱃값이 세수 확대를 할 수 있는 최적점이라는 내부 연구 보고서가 알려지면서 정부의 주장은 급격히 신뢰를 잃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의 강도 높은 금연 광고를 사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위까지 낮춘 정부가, 이제 와서 국민 건강의 최대 위해 요인을 흡연이라 꼽으며 2000원 이상 담뱃값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누구 보더라도 그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담뱃값 2000원 인상이 가져올 최대의 수혜자는 정부다. 이번 인상안이 확정되면 늘어나는 세수입만 2조8천억 원에 이른다. 반면 가장 큰 피해자는 담배를 끊지 못하는 흡연자들이다. 3일에 한 갑, 한 달에 10갑을 소비하는 흡연자는 한 달에 2만 원, 1년이면 24만 원을 고스란히 더 부담해야 하고 이 돈의 대부분은 정부 수입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번 담뱃값 인상을 두고 아무리 정부가 '금연정책'이라고 말해도 '서민 증세'로 받아들이는 데는 이런 셈법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1년에 24만 원 늘어나는 담뱃값이 무서우면 끊으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금연정책. "아편 놓고 영국과 중국이 맺었던 불평등 조약 같다"는 농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아빠 담배 피우면 배 안이 까맣게 되고, 숨도 못 쉰대."
막내 딸아이가 학교에서 금연 동영상을 보고 난 후 아빠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면 정색을 한다. 때문에 집에서는 담배를 아예 피우지 않는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을 통한 금연 정책은 아이의 잔소리만큼의 효과도 없이 짜증만 유발한다. 비단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담뱃값 인상안이 발표되자 서민들의 주머니 털기라는 비난이 이어졌고, 담배 사재기를 하는 모습도 늘어났다. 정부가 부랴부랴 사재기 처벌까지 꺼내 들었지만, 애초 여론 수렴 없는 졸속 정책 발표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다.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담뱃값 인상, 물가 인상의 뇌관 될 수도 담뱃값 인상의 피해자가 담배를 끊지 못한 흡연자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삼성증권의 발표에 의하면 정부안대로 담뱃값 2000원 인상이 확정될 경우 근원 물가 상승률이 3%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자칫 담뱃값 인상이 물가 인상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 정부안대로 담뱃값에 물가 연동제를 적용할 경우 앞으로 매년 담뱃값이 오르게 되고, 오른 담뱃값이 또다시 물가 인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담뱃값 인상의 피해는 흡연자뿐만 아니라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 전체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왔다고 자평해 왔다. 최경환 경제팀은 오히려 저물가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디플레이션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소비를 유발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서민 경제와 국가 유가 하락 등에 힘입은 수입 안정세가 보여주는 착시 현상일 뿐,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서민들이 느끼는 물가는 여전히 높다. 담뱃값 대폭 인상으로 물가를 흔들고, 성장을 이유로 물가 인상을 유도하는 것. 서민 경제를 나락으로 밀어 넣는 위험천만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일은 담뱃값 인상으로 끝날 것 같진 않다. 지난 12일 정부는 지자체 재원 확충을 위해 평균 4620원인 주민세를 2년에 거쳐 2만 원 미만으로 올리고, 자동차세도 대폭 인상할 것을 시사했다. 20년 동안 묶여 있어 목욕비에도 못 미치는 주민세를 현실화한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인데, 정작 20년 동안 목욕비가 왜 이렇게 올랐는지, 서민들의 수입은 왜 늘어나지 않는지 대해선 아무런 설명도 없다. 정부가 수출과 대기업 위주 정책으로 물가를 폭등시켜 놓고 이제 그 물가를 기준으로 주민세 등 간접세를 현실화하겠다니. 이건 억지이자, 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퍼붓는 세금 폭탄이다.
'증세 없는 복지'.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다. 따지고 보면 실현될 수도, 실현돼서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공약일 뿐이다. 집권 1년 반이 지난 지금 정부는 복지에 대해서도, 나라 살림에 대해서도 갈피를 못 잡는 모양새다. 복지 예산 때문에 지자체와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고, 복지 사업은 축소를 당연하다는 듯 대선 공약 뒤집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담뱃값 인상과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지자체 복지 예산 요구를 무마해 보려는 얄팍한 증세 속임수에 불과하다.
복지 위해 증세가 필요하면 부자 감세·범인세 감면 철회 선행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