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동녘마을 정경벽화가 그려져 한결 정갈해진 동녘, 이제 벽화마을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게 들린다
김정봉
물 서쪽은 큰 땀, 동쪽은 동녘
실개울은 마을을 동·서로 가른다. 물 안쪽, 서쪽은 '큰 땀', 물 건너편 동쪽은 '동녘' 혹은 '동촌'이라 부른다. 성(城)이 성 안과 성 바깥으로 나누듯 물이 물 안과 물 바깥을 나누었다. 성으로 따지면 성 안이 큰 땀이고 성 너머가 동녘이다. 성의 사방(四方)에 문 달리듯 실개울에 여러 개 다리(橋)가 달려 그곳으로 드나든다.
큰 땀은 양반 동네, 동녘은 농사를 짓는 양인(良人)이 살던 마을이라 들었다. 예전 말로 큰 땀은 반촌(班村)이요, 동녘은 민촌(民村)이다. 큰 땀은 어질고 덕망 있다는 요수 신권(慎權)의 자손들이 수백 년 대를 이어 이룬 거창 신씨의 집성반촌(集姓班村)이다. 반면에 동녘은 성(姓)은 달라도 같은 처지라는 동질감과 평등의식이 핏줄에 우선하는 그런 마을이었다.
지금은 모두 옛날 말이다. 큰 땀은 반촌답게 기와 고가들이, 동녘 마을은 개량한옥이 대부분이어서 집 모양으로 예전의 모습을 짐작할 뿐이다. 지금은 집 모양만 다를 뿐 삶의 차이는 없다. 큰 땀에 붙어있어 동녘이 작고 초라해 보이나 모두 황산마을, 우리의 농촌마을이다.
금산 내 고향 마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전말로 하면 민촌. 이름도 민촌답다. 성 너머, 족실, 비실, 음지리, 양지리, 굴어, 어동굴, 원줄, 원댕이, 당골, 서당골 등 유래를 알 듯 모를듯한 재미난 이름들이다. 모두 산줄기 따라 생긴 손바닥 만한 땅, 그 땅의 여러 조각을 이고 어렵사리 살아온 사람들의 마을이다.
언제부터인지, 민촌에서 부자난다는 말이 생겨났다. 체면을 멀리하고 악착같이 산 결과다. 장날에 채소든 뭐든, 돈 되는 건 모조리 광주리에 이고 팔기 시작하여 한 푼, 두 푼 쓰지 않고 모았다. 그 돈으로 땅 한 조각 또 한 조각 늘려 지금은 꽤 부자소리를 듣는 집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 예전 민촌도 그럭저럭 살 만하게 되었다. 동녘도 내 고향 마을도 모두 민촌, 보통 농촌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