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전마을 토석담 아름답고 향토적 서정이 깊게 밴 우리 오래된 마을담은 마을사람들의 세월을 품었다
김정봉
몇 년 전부터 스러져가는 것이 안타까워, 문화재청은 몇 개 마을담장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고성 학동, 거창 황산, 산청 단계, 성주 한개, 익산 함라, 강진 병영, 담양 삼지천, 부여 반교, 산청 남사, 대구 옻골, 군위 한밤, 완도 상서, 신안 사리, 의령 오운, 정읍 상학, 여수 사도·추도, 영암 죽정, 무주 지전마을 등이다. 반교마을 빼고는 전라도, 경상도 한갓진 곳에 흩어져 있다.
두 아들 중 막내아들을 군에 보낸 아버지로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답답함과 자괴감, 우울과 무력감, 두려움이 나를 옛 마을로 내몰았다. 모나고 못난 부류(部類)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가 오래된 담장 하나로 치유될까마는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일 먼저 찾은 마을은 지전(芝田)마을. 무주에 있다. 무주는 어떤 곳인가? 무주의 젖줄 남대천변(南大川邊)을 빼고는 사방팔방 모두 산이다. 산이 깊어 오죽하면 "무주구천동 투표함이 도착해야 선거가 끝나는 거여"라는 촌로의 말과 함께 "이 친구 아직 무주구천동이네"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전라도에서 경작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 무주다. 논과 밭이 있다 해도 다른 데 비하면 손바닥만하다. 조선시대에는 상수리(도토리)와 밤을 저장하여 양식으로 삼았다는 기록도 있다. 산이 깊은 만큼 물은 거칠다. 남대천은 비단 강, 금강의 물줄기라 하나 윗물이라 아직 거칠다. 무주사람들은 이런 거친 산과 물을 이겨내고 달래며 거세게 살아왔다.
최북의 메추라기는 무주의 지전마을인걸은 땅의 기운으로 태어난다 했다. 한평생 거칠고 수수께끼처럼 살다간 영·정조 시대 화가 최북(崔北1712-1786)이 무주사람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주 태생의 근거가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주에 최북기념관을 지어 그를 무주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체구는 작달막하고 술 좋아하여 기행을 일삼은 최북. 빈센트 반 고흐가 스스로 자기 귀를 잘랐듯 최북은 송곳으로 자기 눈을 찔러 애꾸눈이 되었다는 일화가 전할 만큼 자기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미치광이(狂生)이라는 소릴 듣는 그였다. 무주만큼이나 거친 삶을 살다간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