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원룸에 곰팡이가 핀 모습.
민달팽이유니온
하윤이 새로 구한 집은 또 반지하였다. 그래도 공간분리가 잘 돼 있는 집이라 그전에는 없던 부엌이 생겼고, 몇 만 원이지만 주거비도 줄었다. 기대에 들떴지만 실생활은 '시궁창'이었다.
"집에 창문이 있었는데 그게 장식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별로 안 걸렸어요. 하루는 창문 다 열고 선풍기 틀어놓고. 대문도 열었어요. 근데 아무리 다 열어 놔도 공기가 안 흐르더라고요. 공기의 흐름이 있어야 환기가 되잖아요. 다른 건물이 가까워 바람이 나가다가도 가로 막히는 느낌이고, 창문 밖은 주차장이라 먼지도 많이 들어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라 시선 때문에 창살이랑 발이 쳐 있었거든요. 물론 그거 없어도 공기가 잘 통하는 구조는 아니었어요."특히 여름엔 집에 습기와 열기가 가득해 마치 한증막에 있는 것처럼 호흡이 곤란해질 지경이었다. 머리가 계속 아팠고 심적으로 취약해졌다. 백화점에서 12시간 가까이 일을 하고 쉬러 들어오는 집이 오히려 불편했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었다. 환경이 이렇다보니 하윤은 건강상의 위협을 느꼈다. 왜 이렇게 집을 지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이런 집에 세를 놓은 집주인에게 화가 났다.
공기가 흐르지 않는 집에서 겪은 두 번째 큰 사건은 곰팡이의 습격이었다. 그 집에서 지낸 지 2년째가 됐을 때 일이다.
"여름에 빗물이 들어와서 벽에서 빗물이 줄줄 흘렀어요. 뭐랄까 벽에 인테리어로 물을 흐르게 해놓는 거 있잖아요. 콸콸 흐르는 건 아니고 벽타고 흐르는… 하하.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어. 그래서 가구랑 옷에 곰팡이가 다 핀 거예요. 제가 책을 좋아하는데 책장으로 쓰고 있던 것도 그렇고 가죽 가방이랑 신발에도 다 폈어요. 그리고 부엌이 따로 생겼으니까 '나도 요리할 거야!' 하면서 샀던 도깨비방망이에도 구석구석 곰팡이가 폈어요. 그 외에도 조미료 그릇… 아, 간장병! 간장병 안은 무사해요. 근데 병 바깥에 핀 거예요. 세상에 세상에 곰팡이가 여기저기 막…."보일러 수리 요청하자, "당장 나가라"는 집주인그 꼴을 보고나니 이 집은 사람 살 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계약이 끝나는 겨울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세 번째 사건이 벌어졌다. 날씨가 추워 수도랑 보일러가 동파돼 수리를 요청했는데 집주인이 그 책임을 하윤에게 물은 것. 물을 잠그지 말고 졸졸 흐르도록 틀어놔야 하는데 안 한 거 아니냐는 것이다.
집주인들의 흔하디 흔한 책임회피의 말을 듣자니 어이가 없었다. 말다툼이 있었고, 집주인은 갑자기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하윤은 지금 나가길 바라면 직접 비용을 대 포장이사를 부르라고 했다.
아침부터 전투력이 상승한 하윤은 임대차 계약기간 동안 자신에게 우선하는 권리와 이사비용을 찾아봤다. 퇴근길에는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고시원을 돌아봤다. 집주인과 또 싸우다 당장 집을 나와야 하면 들어갈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근데 집에 들어오니까 바닥에 발자국이 나있는 거예요. 집주인이 온 거 같긴 했는데 경찰에 신고를 했어요. 경찰도 짬밥이 있으시니까 눈치를 깠죠. 좋게 마무리 하라고 하셨어요. 사실 집주인이 집에 문제가 있을 때 들어올 수 있잖아요. 하지만 집에 사람이 살고 있는데 신발도 벗지 않고 안방까지 발자국이 찍힐 정도로 만들어 놓다니. 이게 대체 뭐냐고요."집주인은 고장난 보일러를 확인하느라(그날 수리를 한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고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말없이 집에 들어온 것도 황당하고, 보일러실뿐만 아니라 안방까지 발자국을 남기고 간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싸움의 이유가 됐던 수리비용에 대해서도 경찰이 집주인이 내야 한다고 할 때에야 비로소 집주인은 수긍했다. 그렇게 보일러를 겨우 고쳤다. 하지만 집주인은 계약이 끝나 보증금을 돌려줄 때 집을 너무 더럽게 썼다는 이유를 들며 청소비용 3만 원을 제했다. 하윤은 이 집을 '최악의 주거공간+집주인'으로 꼽았다.
안전한 집에 산다는 것, 보안이 취약한 현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