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살인죄를 적용해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형사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대검찰청사 앞을 지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하지만 피해자 외에도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유가족들도 여럿 이날 검찰청 정문에 모였다. 이들 중 서인맘(온라인 카페 필명)은 큰딸을 첫돌날 하늘나라로 보냈다. 백승목씨는 두 돌을 20여 일 앞둔 첫 아이를 가습기살균제로 잃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가슴에 아이를 묻은 엄마와 아빠들이 '가습기살균제 참사 일으킨 살인기업을 처벌하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3년 전인 지난 2011년 8월 31일 보건복지부가 가습기살균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한 후 1년이 지나는 동안 정부는 부처끼리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해 피해 대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살균제 흡입독성 실험으로 유해성을 확인한 6개 판매업체 제품 가운데 "인체에 안전, 안심하다"는 허위광고를 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세퓨 가습기살균제', '아토오가닉 가습기살균제' 등 4개 업체에게는 솜방망이 처벌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나머지 '롯데마트', '글로엔엠(코스트코 PB 납품업체)' 등은 경고 조치만 했다.
정부의 역학조사 발표가 난 지 2년 뒤인 2012년 8월 31일 아홉 유가족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옥시싹싹 등 6개 판매업체와 4개 제조업체를 포함해 10개 가해업체를 과실치사 혐의로 형사고발을 했다. 당시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접수된 피해 신고는 174명이고 이중 사망자는 52명이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제조회사 살인 혐의로 고소하기까지검찰의 조사는 더디게 진행했다.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원회'의 피해 판정을 기다리겠다는 이유를 들어 사건 조사를 미루다가 형사고발 6개월 후 '기소중지(시한부 기소중지-해외여행, 중병 등 소재불명 이외의 사유)'로 처분결과를 통지했다.
그리고 올해 3월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원회는 피해 신고 540여 건 중 361명(사망 104명)에 대한 첫 공식 판정을 했다. 그 결과 가능성 높음 판정을 받은 일부 피해자 168명(46%)에게 구상권을 전제로 한 의료비를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가해 기업들은 여전히 책임 있는 사과 없이 오히려 정부의 흡입독성 실험 결과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가습기살균제 시장의 47%를 점유하고 피해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옥시레킷벤키저는 '인체에 안전', '안심하고 사용' 등 허위과장 광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부당하다고 취소 소송을 했다. 그러나 지난 8월 17일 서울고등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에 대해 시정명령을 하고 과징금 부과를 한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은 기소중지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을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규정하고, 수사촉구와 더불어 제조판매회사를 살인 혐의로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 지난 8월 16일부터 열흘간 고소인단을 모집해 64가구 102명이 참여했다.
지난 2012년은 피해 유족으로만 구성되었으나, 이번에는 생존한 피해자들도 반드시 가해 기업을 처벌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해 고소인단에 참여했다. 또한 신규로 신청한 피해자도 일부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