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이 경유했던 지역들정치가이자 군사가였던 왕양명은 중국 남부 대부분 지역을 거치면서 흔적을 남겼다. 양명학의 거두이자 군사가로도 공을 남긴 양명의 경유지. 저지앙 위야오 고향에 있는 전시관에 있는 지도다
조창완
중국에도 위대한 여행가들이 많다. 필자에게 꼽으라면 서하객(徐霞客, 1586 ~ 1641)과 왕양명(王陽明 1472 ~ 1529)을 들고 싶다. 서하객은 중국에서 여행가의 대명사인데, 재미있는 것은 그의 여행기가 자신은 존재도 알지도 못한 타성받이 친아들에 의해 정리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4대 사화에 버금가는 정치적 사건인 동림당 사건(명말 동림당東林黨을 중심으로 개혁파 정치가들이 중앙에서 활동하려다가 환관 위충현의 세력에게 좌절되는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서하객은 세상을 주유하고 기록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그의 여행지는 동서남북으로 현 중국 대륙의 상당수를 포함하고 있다. 교통이 좋지 않았고, 언어도 차이가 많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곤란을 겪었다.
그의 여행기는 자칫 동림당 사건의 후화로 모두 잃어버릴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그가 잠시 만났다가 헤어진 첩이 낳은 아들 이기(李寄)가 필사적으로 그의 기록을 모아서 10분의 1정도가 남겨졌는데 그것만으로도 중국 최고의 여행가로 꼽힌다.
반면에 왕양명은 여행가가 아닌 군인으로 중국을 주유했다. 철학자이자, 사상가이자, 교육자였던 왕양명은 중국 남부 대부분을 다녔다고 할 만큼 넓은 영역을 다녔다. 그의 칼에는 수만 백성의 피가 묻었기에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경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사상을 만들어냈다.
그 뒤를 잇는 여행자로 강희제를 꼽을 수 있다. 강옹건 시대의 초석을 닦은 강희제(康熙帝, 1654.5.4 ~ 1722.12.20)는 중국 역사상 가장 활동 범위가 넓은 황제로 중국 곳곳에 그의 흔적이 쌓여있다. 황제의 방문은 단순한 감시의 영역을 넘어서 각 지역과의 소통의 의미까지 담고 있기 때문에 그의 행보는 놀랍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반청복명의 기운이 팽배한 시대에 중국 전역을 다니면서 닦은 기반이어서 더 높게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최부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에서 남긴 여행기도 만만치 않다. 우선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은 중국을 넘어선 위대한 여행기로 인정받고 있으며,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중국에서 출간되어 연구에 활용될 만큼 좋은 여행기다.
최부가 그러했듯 박지원 역시 필담으로 중국인들과 교류했다. 열하일기가 담고 있는 내용을 보면 그 깊이나 이해에 놀라게 된다. 특히 저잣거리에 쓰인 글을 읽고 와서 쓴 '호질' 등은 그 양이나 깊이에서 어느 창작 작품보다 뛰어나다. 사실 시대를 불문하고, 국가를 불문하고 통하는 역사나 사고의 깊이는 큰 차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