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무죄였으니, 항소심 재판부는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진술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미정의 아버지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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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아버지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미정(가명)은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학교 선생님에게 털어놓았다. 학교 선생님은 미정으로부터 이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경찰에 신고하였다. 당시에 미정이는 고통스런 피해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이지만 자신을 보호할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를 고소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법적 진행 과정에서 아버지를 처벌하기 위해 진술을 거듭해야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장기간 지속되었던 피해 사실을 정확히 기억해서 진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성폭력을 당하는 것보다 조사 과정이 더 싫고 힘들었다"는 미정이 사건의 가해자는 1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불안한 상태에서 진행한 미정이의 초기 진술이 피해사실의 '신빙성'과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가해자의 무죄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피해 일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면서 진술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의심받게 되는 상황은 많은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이 법적 진행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고충이다. 장기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범행을 일일이 기억하여 정확히 진술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겪었던 사건을 잊고,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뒤섞어 왜곡하고 별 것 아닌 일처럼 기억을 바꿔 버리기도 한다.
더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의 기억이 서서히 희미해지는 점을 고려할 때, 피해자들에게 피해일자를 완벽하게 기억해 진술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수사 재판 과정에서 "왜 그런 중요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냐"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들을 때마다 미정이가 했던 "아빠가 집에 있으면 늘상 있었던 일인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냐?", "난 기억하기도 싫다"고 한 항변은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상황을 정확히 대변하는 것이다.
다행히 항소심 재판부는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진술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미정의 아버지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히 나이 어린 피해자가 장기간에 걸쳐 친족간 성폭력 범죄를 당한 경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할 때 이와 같은 친족간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친족성폭력 가해자 처벌 아직은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