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침몰사고 단원고 생존학생 학부모 대표 장동원씨.
이희훈
- 시민 참여를 예상했습니까? "전혀 못했죠. 아이들 때문에 잠을 잘 못잤는데, 새벽 4시인가 5시인가. 숙소 방문을 열어놨었는데, 누가 들어오는 거예요. 새벽 내내 만들었다면서 과자하고 밭에서 직접 딴 오이를 밀어 놓고 갔어요. 굉장히 감동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인사 못 드렸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가장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면?"시민들이죠. 이튿 날 아침에 복지관을 출발하는데 80명이 넘는 시민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 중에 여섯 살짜리 꼬맹이도 있었어요. 교사에게 '어떻게 나왔냐'고 했더니 '언니, 오빠들이 우리 아이들 보면 힘이 날 것 같아서 데리고 왔다'고 했어요.
신체장애를 갖고 있는 대안학교 학생들도 마중 나왔어요. 몸이 불편한데,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응원해준다는 점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아이들이 속으로 아픔을 갖고 있을지라도 저 친구들을 봐서라도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의도에 도착한 뒤에도 행렬은 끝이 안 보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뒤돌아보라'고 했지요. 그걸 보고 우는 애들도 있었고요. 정말 이 아이들의 한 발걸음이 큰 발걸음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한 걸음, 한 걸음이 수십 명, 수백 명, 아니 전국의 많은 시민들이 응원들을 해줬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 죽지 않았구나,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아이들이 직접 본 것이죠. 매일 기사에 달린 댓글만 보다가 끝이 없는 행렬을 목격한 것이죠.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또 아이들이 무사히 완주한 것도 감동적이었습니다. 행진을 마치고 안산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탄 뒤,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울기도 했어요. 아이들에게 다가가 물었더니 '아저씨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생중계를 해주니까 함께 못 오신 부모님들도 보시고 안심을 하셨고, 아이들 걱정에 행진에 반대했던 부모님들도 가기 전에는 걱정했지만 별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저도 나중에 알았지만 시민들이 국회 정문 앞에 노란 꽃잎을 깔았더라고요. 꽃이라는 게 애들한테 딱 어울리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꽃잎을 지르밟고 가는데 유가족들이 많이 울었습니다. 희생당한 애들도 다 꽃같이 예쁜 아이들이잖아요. 꽃을 깔아준 것은 죽은 아이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라는 뜻 아니었겠어요."
- 아이들이 유가족에게 쓴 편지에 아이들이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했습니다. 행진과 같은 직접 행동을 앞으로도 하겠다는 것일까요?"많은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현실로, 학교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고를 잊지는 못하겠지만 이제는 이겨내고 있잖아요. 학생이니까 공부해야 되고 현실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또 어른들의 몫이 있는 거잖아요. 생존 학생 부모님들은 유가족을 어떻게 도울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 행진이 심리 치유의 첫 걸음이었다고 말씀을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다고 봐요. 학생들은 친구에 대한 죄스러움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행진에 앞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과연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고2라면 친구 사이의 의리, 우정이 전부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이 고민을 하고 그 고민을 표출할 방법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 출발점이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십자기를 메고 가는 분들(유가족 순례단)을 따라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번 도보 행진을 하면서 아이들이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상담 치료보다 더 치유가 되고 있다고 보는 것 같아요. '속이 후련하다', '답답한 가슴이 뻥 뚫렸다'고 말했어요."
- 행진 후에 따님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저에게 '아빠, 잘했다'고 해요. 또 '친구한테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뿌듯했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제 딸과 가장 친했던 친구의 아버님(유가족)이 계시는데 국회에서 못 만났어요. 아버님이 광화문에 있다가 국회로 오는 중에 길이 엇갈린 거예요. 나중에 전화로 아버님이랑 통화를 했는데, '애가 나를 찾았을텐데 미안하다'고 했어요. 내 자식도 없는데 남의 자식 못 본 게 미안하겠어요. 제가 더 미안하죠."
- 학부모들이 이렇게 환한 모습 처음 봤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합니다. "트라우마라는 게 부모와 대화도 없고 시무룩해 있는 거잖아요.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고요. 그런 모습만 보다가 행진에서는 서로 위해주고 '깔깔깔' 웃었잖아요. 당연히 해야하는 것인데 아픔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못한 겁니다. 서서히 아이들이 자기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어요. 원래는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많아서 말도 잘 안했는데 사고에 있었던 얘기를 하고 있어요. 어제도 광주에서 검사가 와서 아이들의 진술을 받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진술을 하고 있는 그대로 얘기를 했습니다."
장동원씨 인터뷰② "'살아 남은 애들이 왜 특혜받냐'는 말, 큰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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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아이들이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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