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이 쓴 경전선 여행기 <남도여행법>겉 표지
생각을 담는 집
남도여행법.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여행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을 운영 중인 김종길의 여행기입니다. 김종길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 연속 다음-티스토리 우수 블로거로 선정됐습니다. 몇 해 전부터는 <오마이뉴스>에서도 그의 여행기를 자주 접했습니다.
<남도여행법>은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경전선 여행기입니다. 경전선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철도인데, 경남 밀양 삼랑진역에서 광주 송정역까지 300km에 이르는 남도의 크고 작은 여러 지역을 지나는 기찻길입니다.
"1903년 삼랑진과 마산포를 잇는 공사를 시작으로 1905년 마산선이 운행을 시작함으로써 지금의 경전선이 비롯되었다. 그 후 1925년에 마산과 진주, 1930년에 광주송정과 순천, 1968년에 진주와 순천을 잇는 경전선이 완성되면서 경전선은 그 이름에 걸맞게 경상도와 전라도를 오가는 기차가 되었다." - <남도여행법 中>경전선은 산업화가 한창이던 시절엔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인기있는 교통수단은 아닙니다. 지금 사람들이 경전선을 외면하는 까닭은 이 길을 달리는 무궁화호가 느리기 때문입니다. 고속철도인 KTX를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철도 구간 구간 나란히 달리는 남해고속도로 위의 자동차와 비교해도 무궁화 열차는 느릿느릿 달립니다.
가장 느린 기차로 떠나는 여행저자는 느린 기차가 달리는 '경전선'에 주목했습니다. 가장 느린 기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지요. 경전선을 타고 떠나는 오래된 마을을 향한 과거로의 시간여행.
"제아무리 고속철도가 들어와도 구불구불 느릿느릿한 경전선의 매력을 앗아갈 수는 없다. 수 많은 간이역이라는 섬을 하나하나 이어주며 서두르지 않고 오늘도 제시간에 역사에 들어서는 정직하고 믿음직 스런 경전선이다." - <남도여행법 中> 시골 마을을 지키는 촌로나 이용하는 줄 알았던 경전선. 여행자는 이 경전선을 '서두르지 않고 제 시간에 역사에 들어서는 정직하고 믿음직한' 교통수단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삶의 흔적을 좇는 그의 여행법과 딱 어울리는 교통수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산업화 시절 절정기를 맞았던 경전선이 오늘날 속도 경쟁에 뒤처지는 까닭은 기차가 지나가는 남도의 도시와 시골역을 잇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도의 도시와 시골마을에 빠른 속도로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오래 전부터 마산서 기차를 타고 광주송정역이나 목포역까지 여행을 떠나리라 마음먹고 있었지만 끝내 다녀오진 못 했습니다. 늘 기차보다 빠르고 편리한 승용차를 택한 까닭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지난 시절, 바빴던 일상의 삶처럼 여행조차 늘 바쁘게 다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종길의 경전선 여행은 다릅니다.
느리기 때문에, 놓치지 않는 것"경전선 여행은 좀 더 느린 방식의 여행, 떠나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여행, 일체의 근심걱정을 떨칠 수 있는 여행이다. 한적한 간이역과 기찻길 옆 사람들의 삶이 묻어나는 오일장, 덩그러니 팽개쳐 있는 이 시대의 문화유적을 보며 스스로 치유하는 길이기도 하다."-<남도여행법 中>경전선이 막 건설될 무렵엔 무려 60여 개의 역이 있었다고 합니다. 책을 펼쳐 들고 여행자의 발걸음을 쫓다보면 사연과 역사를 간직하지 않은 역이 없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역도 있고,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진 역도 있습니다. 문학작품의 배경이 됐던 곳도 있지요.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길이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100년 전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골목길과 건축물이 남아있는 곳도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철도는 근대화의 상징입니다. 100여 년 전 도시와 마을에 철도가 놓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지금처럼 시간에 맞춰 살기 시작했습니다. 기차가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정확한 시간에 맞춰 사는 사람보다 그냥 때에 맞춰 사는 이가 많았습니다. 과거처럼 시간을 잊은 경전선 여행길. 그래서인지 곳곳에 근대 문화 유산을 찾아갈 수 있는 역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근대 문화를 대표하는 문학작품을 엿볼 수 있는 지역도 많이 지나갑니다. 옛 모습을 간직한 경전선의 역들은 그 자체로 이미 근대 문화유산입니다.
저자 서문에서 밝혀 놓은 유명한 문학작품의 배경은 모두 경전선을 지나는 역들입니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 김승옥의 <무진기행>, <등신불>의 배경이 된 다솔사,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 평사리로 이어지는 하동, <무소유> 법정스님의 불일암,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벌교가 모두 경전선에 걸쳐있습니다.
6부로 구성된 <남도여행법>은 마산선, 진주선, 섬진강의 동쪽, 섬진강의 서쪽, 광주선1, 광주선 2로 나뉘어 있습니다. 저자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기차가 서는 30개의 역에서 각각 내려 경전선과 멀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여행을 다녔다는 군요.
기차서 내려 다시 버스타고 걷고... 남도의 '느린 여행'30여편의 여행기를 다 소개할 순 없는 노릇이니 책에 담긴 역 중 가장 마음에 닿는 역만 멈춰가며 간략히 소개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광주까지 이어지는 경전선의 출발역이면서 1903년 경전선 공사가 처음 시작됐던 삼랑진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