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
큐리어스
김진석, 걷기를 한없이 싫어하던 그가 제주올레를 만나면서 걷기를 시작했고, 홀연히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걷기에 빠져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그는 달라졌다. '길 위의 사진가'로 거듭났던 것이다.
그는 이제 걷기 전도사가 되어 걷고 또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모아서 책으로 남긴다. 그렇게 낸 책이 7권이 되었다. 그 책들 가운데 <걷다 보면>이 걷는 그의 모습을 가장 진솔하게 나타낸다. 그만큼 깊이가 더해진 것이다.
<걷다 보면>은 김진석이 걸었던 산티아고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뒷부분에 그가 걸었던 제주올레, 규슈올레, 투르 드 몽블랑, 히말라야, 스페인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곁들여진다. 참 많이도 걸었다.
<걷다 보면>을 보면서, 읽으면서 나는 산티아고를 걷기 전의 그와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뒤의 그를 떠올렸다.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그의 몸피는 아주 홀쭉해져 있었다. 40여 일을 배낭과 함께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걸었으니, 살이 빠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고생이 심했지? 다시는 걷고 싶지 않겠네?"내 물음에 그는 "요즘도 하루에 15km 이상 걷고 있어요. 안 걸으면 너무 이상해서요"라고 대답했다. 그것도 그냥 걷나, 배낭을 메고 걷는다는 거다. 드디어 걷기에 중독된 것이다. 쉽게 치유되지 않는 병, 걷기. 걸으면 걸을수록 깊이 빠져드는 병이다. 환영한다, 김진석. 나도 같은 병을 앓고 있다.
왜 카미노를 걷기로 했는지 묻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일단 걸으며 생각해보기로 했다. 오늘 답을 찾을 수 없다면, 내일 생각해보자. 그래도 안 떠오르면 그 다음 날, 또 다음 날... - <걷다 보면> 본문에서이랬던 그가 산티아고를 걷고 달라졌다. 다른 길을 찾아 떠났고, 그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면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 마지막 고비라고 할 수 있는 고락셉까지 가는 길. 산소는 부족하고 고산병까지 겹쳐 힘겨웠다. 그때 저 멀리 거대한 산 앞의 능선을 야크 한 마리가 오르고 있다. 쉬지 않고 저벅저벅 걷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나도 지금껏 순탄한 길을 걸어오지 않았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저 야크처럼, 묵묵히 길을 걸어갈 것이다. - <걷다 보면> 본문에서 김진석은 다시 도보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9월, 프랑스로 훌쩍 떠나 파리를 두 달에 걸쳐 걸을 예정이란다. 파리라는 도시에 그의 발자국을 제대로 남기고 돌아와 그 흔적을 다시 책으로 엮어낼 작정이다.
그가 걸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790km였지만, 이번에 그가 걸을 길은 1200km에 달한다. 그는 배낭에 카메라까지 짊어지고, 묵묵히 한 마리 야크처럼 파리 도심에서 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 결과물이 기대된다.
<걷다 보면>을 보고, 읽은 뒤 나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도 이제는 길을 나서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일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한, 떠나지 못한다. 이제 그만 일을 접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에이, 괜히 <걷다 보면>을 읽었다. 내 일상을 제대로 흔들어 놨다. 그 유혹에 빠지고 싶은 이들에게 <걷다 보면>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