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써 본 돋보기첫 마감을 하느라 돋보기 안경을 썼다.
유이분
일터를 옮기게 됐다. 전 직장보다 노동 조건이 나아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내가 맡은 일이든, 동료 간의 우애든, 일터의 가치 지향 면에서 볼 때는 전보다 아주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됐다. 그래도 5년 넘게 일한 일터를 옮긴다는 게 마음이 참 힘들었던 모양이다. 퇴사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로, 또 이직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두어 달 사이에 몸무게가 눈에 보이게 줄어들고 간 수치는 올라갔다.
담당의사는 그동안 먹던 간 치료제의 양을 늘려서 처방했다. 이렇게 몸도 맘도 고단하면 더는 못 살 것 같은 기분. 그래 내 나이 쉰, 이 나이면 살아간다는 건 죽어간다는 것과 동일어인 거지.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삼으려 해도 맘의 평정을 찾기 어려웠다.
5년 만에 옮긴 직장, 그런데 눈이 왜 이러지?새 일터는 월간지를 만드는 출판사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마감이 시작되었다. 원고 교정을 보는데 눈이 시리고 글자가 흐릿하게 보이고 마구 흔들리기에, 이상하다고, 내 몸과 맘이 고돼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늦은 퇴근길, 안과는 문을 닫았을 테니 시력이나 재보자 싶어 안경점엘 갔다. 증상을 얘기하고 검사를 한 결과 아, 노안이란다. 으아! 이날 입때껏 시력 하난 좋다고 자신만만했더랬다. 지난 연말에 건강검진 할 때도 시력이 1.2, 1.5가 나오기에, 내 몸에 멀쩡한 기관은 눈뿐이라고 깔깔대며 좋아라 했다. 헌데 시력이 나빠진 것도 아니고, 나이 들면 온다는 노안이라니… 케겍! 오우, 노우~!
돋보기를 맞추라는 안경사의 말에 참담한 심정이 되어 싸구려 안경테를 하나 골랐다. 그래야 당장 일을 할 수 있을 테니…. 이제 와 생각하니 첫 안경인데 기분이라도 풀게 좀 폼 나는 걸 맞출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내가 노안이라 안경을 쓰게 됐다는 얘길 들은 후배 하나는 "노안(老眼)이라 쓰고 노안(老顔)으로 읽는다"며 날 놀리더라. 나 역시 안경을 쓰면 이 미모가 가려져 어쩌냐며 우스갯소릴 했지만, 얼마나 기분이 착잡하던지. 갑자기 한 십 년은 더 늙어진 기분….
마감 내내 돋보기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돋보기를 쓰면 글자는 크고 또렷하게 보이는데 어질어질한 거다. 눈앞의 원고는 돋보기를 쓰고 보는데, 컴퓨터 모니터는 콧방울까지 안경을 내리고 눈은 치켜뜨고 봐야 한다. 계속 반복해서 그런 작업을 하려니 어찌나 머리가 띵하고 피로한지 눈동자는 빠질 듯이 아프고….
새 업무에 적응하느라 힘든데 거기에 이런 몸의 증상이, 더군다나 나이듦의 대표적인 증상이 나타났다는 게 울적했다. 우울했다. 서글펐다. 착잡했다. 슬펐다. 씁쓸했다. 뭐 아는 수식어를 다 갖다 붙여도 내 맘을 표현하기 어렵다. 노안은 시력과 상관없다고들 하고, 나이 들어서 그런 거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 하는 친구들 얘기도 있었지만 위로가 되질 않았다.
울적, 우울, 착잡, 씁쓸... 나이듦에 대한 표현할 수 없는 내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