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루쉰공원에서 시간을 즐기는 장년층들베이징 톈단공원이나 상하이 루쉰공원 등에 가면 중장년층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광경을 보기 쉽다. 생각보다 젊다
조창완
요즘 중국 기사를 읽다보면 링호우(零後)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중국에서 연도를 읽을 때 10, 20, 30처럼 뒤에 영이 붙은 해를 숫자에 맞추어 시링(十零), 얼링(二零), 싼링(三零)으로 부르는데, 요즘 많이 등장하는 파링호우(八零後)나 지우링호우(九零後)는 1980년과 1990년 이후에 태어난 연령대를 뜻한다.
사실 한국에도 '386세대'나 '486세대'처럼 컴퓨터의 발전에 따른 세대 명칭도 있고, 베이비붐 세대나 IMF세대 등 곡절에 따른 세대 이름이 있으니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왜 단순하게 10년 단위로 세대명을 붙알까. 그리고 그 세대들이 함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연도처럼 단순한 측면도 있지만 중국 현대에서 각 10년이 갖는 의미는 나름대로 독특한 의미가 있다. 중국을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태어난 시대별로 특색과 역사적 배경을 한번 더듬어 보자.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호칭 '링호우'중국 정치의 세대를 구분할 때는 보통 혁명1세대 등 핵심 지도자의 변화를 통해 정치세대를 구분한다. 혁명 1세대는 마오쩌둥이나 저우언라이, 주더처럼 중국 공산화를 이룬 이들이다. 다음은 장정에 막내로 참여했던 덩샤오핑과 그 비슷한 연령대가 2세대를 이루고, 이후에 집권한 장쩌민이 3세대, 다시 이후에 집권한 후진타오가 4세대, 그리고 지금 주석인 시진핑 세대가 5세대다. 보통 세대의 마지막은 정치국 상무위원에 취임할 수 있는 나이 한계가 70세이기 때문에 이들의 연령으로 맞추면 지도자의 연령을 가늠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의 열여덟 번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임기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다. 나이순으로 보면 위정셩(1945년생), 장더장(1946년), 장가오리(1946년생), 류윈산(1947년생), 왕치산(1948년), 시진핑(1953년생), 리커창(1955년생) 순이다.
때문에 2018년에 새롭게 출범하는 열아홉 번째 상무위원회에는 앞에서 서너 사람이 빠지고, 차기 지도자 주석 후보인 후춘화(1963년생)와 쑨정차이(1963년생)를 비롯해 한두 사람 정도가 상무위원에 포함될 것이다. 상무위원을 되기 위해서는 보통 25명 정도로 구성되는 정치국 위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후보가 될 수 있는 인물은 195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왕양(1955년생), 자오러지(1957년생), 왕후닝(1955년생), 한정(1954년생), 장춘셴(1953년생) 정도가 후보군에 포함될 수 있다.
정치 지도자의 순번대로 보는 것이 정치 중심이라면 태어난 후의 연대를 기점으로 본 '링호우' 호칭은 좀 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호칭이다. 중국에서 보통 링호우 세대는 1950년에 태어난 우링호우(五零后)부터 시작된다. 쓰링호우(四零后)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죽은 영혼(死靈)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같아 보편화되지도 않았고, 너무 연령이 많은 대에게 붙이기에는 적당치 않아서 부르지 않는다.
반면에 '우링호우(五零后)'는 1953년생인 장루오쉐(张若雪)라는 작가에 의해 책으로도 출간돼 문화적 코드로도 자리 잡았다. 1950년에 태어났다면 환갑을 넘은 나이인데 올해 지도자로 부상하는 시진핑(習近平)이 1953년생이어서 그들과 문화적 공감대가 일치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연대적 기억에서 가장 깊게 끄집어 내는 것으로 문화대혁명(아래 문혁, 1966~1976)을 설정했다. 1953년생이라면 문혁 당시 나이가 14살 정도 된다.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부터 대학을 졸업할 시간까지 그들의 기억은 온통 문혁의 기운이 팽배했다.
'지식청년'(知靑)으로 불리지만 정작 지식을 습득할 기회를 잃어버린 세대인 셈이다. 이런 기운은 1951년생인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영화 <인생>의 후반이나 이보다는 늦게 태어났지만 지앙원 감독(1963년생)의 <햇빛 쏟아지던 날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우링호우가 역사의 수레바퀴에만 짙 눌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루오쉐의 책에 나타나듯 이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보상받으려는 듯 월드컵 등을 즐기는 세대다. 이제는 대부분이 인정하는 역사의 오류로 인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도량은 넓어 환갑도 되기전에 현직에서 물러나 앞세대와 뒷세대를 잇는 역할을 했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성공에 대한 열망 높은 류링호우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