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자회사가 허용되면, 수많은 종합병원들은 지금까지처럼 의료진이 원하는 의료기기가 아니라 투자자가 원하는 의료기기를 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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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제 그럴까요? 응급실이 24시간, 365일 항상 긴장감이 흐르는 그런 곳은 아닙니다. 이런 말만으로는 상상이 안 가신다고요? 직접 혹은 주변 사람이 응급실을 이용해 본 경험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꼭 생명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 아니더라도, 복통이나 고열 같은 단순한 증상으로도 응급실을 찾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요?
응급실 역시 진료가 이루어지는 많은 공간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의료기관의 영리자회사가 허용되고 현실화된다면, 응급실 역시 다른 의료 현장들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자회사가 의료기기를 임대 혹은 판매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은 의사의 처방이나 조언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면 위중할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해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응급실 의사가 특정 의료기기를 처방하거나 권유하였을 때, 어떤 환자나 보호자가 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요?
물론 현재도 학교법인 병원 이른바 대학병원에서는 의료기기의 임대 및 판매가 가능하므로 큰 변화는 없을 거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주장입니다. 대학병원과 여타 병원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많은 병원들은 대학병원만큼 재정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정부도 그러한 이유를 들어 영리자회사를 허용한다고 합니다. 그런 병원들에게 투자자의 돈은 더욱 달콤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투자자의 입김은 세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영리자회사가 허용되면, 수많은 종합병원들은 지금까지처럼 의료진이 원하는 의료기기가 아니라 투자자가 원하는 의료기기를 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도떼기시장 같은 응급실에서 기약없는 대기
앞으로는 의료기관이 직접 숙박업도 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응급실은 일반 병실과 달리 환자 곁에서 보호자들이 잠시나마 눈을 붙이고 쉴 공간도 없습니다. 또한 수도권에 위치한 많은 상급병원들의 경우 상당수 환자가 지방에서 올라오기에, 쉽게 귀가하기도 힘이 듭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기관 내에 위치한 숙박기관은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의료기관이 이를 악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듭니다. 보호자들이 숙박기관을 많이 이용하게 만들 목적으로 입원 결정 후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환자들을 방관하는 것이지요. 응급실에서 입원 대기를 하는 경우 의료기관은 입원료를 청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의료기관이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일부 상급병원 응급실은 입원 대기 환자들로 넘쳐납니다. 응급실에서 2~3일 정도 대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 의료기관이 환자를 빨리 입원 시키는 것보다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숙박업에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면 어떨까요. 의료기관은 더 이상 적극적으로 입원 대기 환자를 해결하려 들지 않을 것이고, 응급실 환자의 입원 대기 기간은 더욱 길어지게 될 것입니다. 도떼기시장 같은 응급실에서 기약 없이 며칠이고 대기하는 상황이 늘어날 게 뻔합니다.
그 외에도, 현재 응급실에서 추가 비용 없이 지급하고 있는 환자복이나 침구류를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질을 떨어뜨린 후에 상대적으로 질이 좋은 제품을 의료기관 내에서 영리자회사가 판매를 하는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또한 응급실에서 퇴원하는 환자에게 몸에 좋은 식품이나 운동을 권유하고, 이를 의료기관 내 영리자회사를 통해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씀드린 가정들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더욱 큰 문제는 영리자회사의 허용이 초래할 의료서비스 자체의 영리화입니다. 현실적으로 돈을 벌 목적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행위가 존재하더라도, 이를 드러내놓고 추구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리자회사의 운영이 현실화된다면, 이를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병원들이 우후죽순 생길 것입니다.
의료인이냐, 회사원이냐 기로에 놓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