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동화면세점 앞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대열이 경복궁쪽으로 이동하려다 경찰에 막혔다.
안홍기
동대문경찰서에 도착한 뒤엔 조사하는 경찰관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그런 건 나에게 이야기하지 말고 밑에 적으라"이었습니다. 2차 조사 때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건 변호사한테나 이야기하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대체 국민이 당한 범죄사실을 경찰관이 아니면 누구에게 이야기를 해야 합니까. 3차 조사 때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다"는 답이 되돌아왔습니다.
성추행 피해 사실을 무시한 것뿐만 아니라 본인들 역시 이를 자행했습니다. 유치장에 들어가기 전 여자 경찰관은 저에게 "속옷을 벗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왜요?"라고 물었습니다. "속옷으로 자살할 우려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 경찰관 뒤에는 속옷 탈의에 관한 내용이 담긴 규정문이 벽에 붙어져 있었습니다. 경찰서에 잡혀온 것은 처음인데다 경찰관의 말이니 또 규정문에도 쓰여 있으니 그래야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입고 있었던 옷이 헐렁한 옷이 아니기에 망설여졌습니다. "그렇다면 헐렁한 옷이라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여자 경찰관은 거부했고 결국 저는 속옷을 벗었습니다.
제가 알기론 그날 동대문서에는 총 6명의 여성이 연행됐습니다. 그 중에서 4명이 경찰의 강압에 의해 속옷을 탈의했습니다. 그리고 와이어 없는 브래지어를 했던 한 여성은 네 차례나 항의한 끝에 속옷을 벗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경찰은 브래지어에 있는 와이어로 자해를 할 수 있다며, 위험하다고 했답니다.
브래지어 탈의는 '위법'... 동대문서는 규정문 버젓이그 상태로 저는 2차, 3차 추가조사를 받았습니다. 여자 경찰관은 없고 남자 경찰관들만이 대여섯 명 있는 공간에서 남자 경찰관에게 조사를 받았습니다. 같이 연행된 사람과 "속옷도 없이... 민망하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경찰관의 속옷 탈의 요구가 위법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석방 후에야 대법원이 "브래지어 탈의 강요는 인권 존중, 권력 남용 금지 등을 위반한 것이고,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한 것(2013년 5월, 2013다200438)"이라고 판결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오늘 동대문 경찰서장의 사과문을 보았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저에게 미안하다는 한 통의 연락도 없이 동대문 경찰서 홈페이지에 올렸더군요. 저는 묻고 싶습니다. 그 사과문은 저에게 하는 사과입니까, 책임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올린 사과문입니까? 피해자가 직접 찾아서 봐야 하는 사과가 진정한 사과입니까? 또, 인터뷰(
http://2url.kr/apJe)에서 속옷 탈의 요구는 해당 경찰관의 '실수'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날 제가 본 규정문은 대체 무엇입니까?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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