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계사 주지 관해 스님은 낡고 삭아서 솔이 헤진 저고리를 입고 있었습니다.
임윤수
그러고 보니 스님께서 입고 계신 바지저고리가 많이 낡아 보였습니다. 누덕누덕 기운 곳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옷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오래되고 낡았다는 게 물씬했습니다.
값비싼 옷만을 입고 다녀 불자들 사이에서 '명품 스님'으로 회자되며 희롱되고 있는 스님이 없지 않은 현실을 감안할 때,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출가수행자의 참모습, 갈아입을 옷 한 벌 정도만을 소유하고 있는 검소한 구도자의 모습을 아주 오랜만에 직접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스님 중에서 시주물을 막 쓰라고 하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말로는 시주물을 아끼라고 하면서 정작 당신을 위한 씀씀이에는 통이 커 과다지출을 하거나 허비를 하는 스님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관해 스님께서는 이렇듯 일상적으로 입는 바지저고리조차 낡아서 해질 만큼 절약하고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계십니다.
산새 소리가 들려오면 콧노래로 대답을 하고, 물소리 바람 소리가 들려오면 휘파람 소리로 추임새 넣어가며 성큼성큼 내려걷다 보니 어느새 지리산 아랫마을 중산리 야영장입니다.
단 1그램의 무게라도 더 줄여라자동차는커녕 맨몸뚱이로 올라가는 것도 녹록하지 않은 법계사 가는 길. 산(山)사람이 아니면 한두 번쯤은 쉬어야 힘들지 않게 올라갈 수 있는 법계사까지 1080관(4050Kg)이나 되는 무거운 범종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은 헬기를 이용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범종 전문 제작업체인 진천 '성종사'에서 만들어진 범종은 이미 화물트럭을 이용해 해발 410m쯤 되는 중산리 야영장 공터까지 운반돼 왔습니다. 중산리 야영장에서 법계사까지는 국내 민간항공 중 최대용량을 운반할 수 있는 헬기를 보유하고 있는 항공사와 일찌감치 예약이 돼 있었습니다.
야영장에 도착해 있는 범종은 부직포를 몇 겹씩이나 둘러 단단히 포장돼 있었습니다. 범종을 헬기에 매달아 줄 쇠사슬도 연결됐습니다. 오후 3시 30분이 조금 넘으니 하늘 저쪽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헬기가 불쑥 나타납니다. 헬기는 야영장으로 내리지 않고 먼저 천왕봉 쪽으로 날아가 범종을 내려놓을 자리를 미리 정찰한 후에야 다시 야영장으로 내려와 착륙했습니다. 헬기는 주차의 달인들이 보여주는 주차 묘기만큼이나 아주 능숙하게 범종 옆으로 사뿐하게 착륙했지만 몰고 다니는 바람은 정말 대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