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도 물리칠 수 없는 초미세먼지서울에 발령된 '초미세먼지 주의보 예비단계'가 전국으로 확장되고 있는 지난 1월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바라본 도심이 뿌연 먼지에 쌓여 있다. 기상청은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140~150㎍(마이크로그램)으로, 평소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보다 3배 정도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양태훈
국제암연구소가 이러한 결론을 내린 주요 근거를 살펴보자. 발암물질임을 밝히려면 우선 해당 물질의 오염 정도를 파악하고 사람 즉, 인체 발암 관련성이 밝혀져야 한다. 이 관련성은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체내에서 암이 발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기전이 파악되어야 한다.
이런 평가내용들이 어느 정도 확실한지 또 다른 연구자,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에 따라서 발암여부 및 발암정도가 평가된다.
대기오염 수준평가에서는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오존 등의 주요 오염성분이 조사되었고 분진의 경우 초미세먼지(PM2.5)와 호흡성 미세먼지(PM10) 그리고 입자가 매우 큰 분진까지 모두 파악되었다. 유럽과 북미지역에서는 오염도가 점차로 낮아지는 추세지만 개발도상국가들에서는 오염도가 급증해왔고 지속적으로 건강위해 수준을 초과했다.
대기오염물질의 오염도와 건강영향에 대한 평가는 유럽, 북미, 아시아 지역 등에서 폐암발병과의 관련성을 조사하는 대규모 코호트 및 환자대조군 역학연구들이 수행되었는데 특히 코호트 연구가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폐질환을 야기하는 원인은 대기오염 외에도 흡연, 라돈 등 여러가지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원인물질들의 영향을 배제하고 대기오염과 미세먼지만의 건강영향을 파악하려면 흡연과 비흡연자를 구분해야 한다. 따라서 매우 큰 규모의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건강한 상태에서부터 추적을 시작하여 폐암이 발병할 때까지 수십 년간 추적하는 연구를 해야하는데 이것이 바로 코호트 연구다. 세계 각지의 서로 다른 환경에서 코호트 연구가 수행되었는데 유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덴마크 연구팀은 유럽 9개 나라 30만명의 건강자료와 2095명의 폐암환자를 대상으로 초미세먼지(PM2.5)농도가 5㎍/㎥ 높아질 때마다 폐암 발생위험이 18%씩 증가하고, 미세먼지(PM10)는 10㎍/㎥ 높아질 때마다 폐암발생위험이 22% 증가한다는 내용의 연구논문을 2013년 8월 유럽의 저명한 의학학술지 란셋(Lancet)에 게재했다.
미세먼지의 건강 위협은 중국이나 인도뿐?암 관련성 조사 외에 대기오염으로 인한 여러 질병을 원인으로 조기 사망한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는 것도 큰 관심거리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 연구팀이 서유럽 13개국 36만7천명을 대상으로 한 방대한 역학연구를 통해 초미세먼지 농도가 5㎍/㎥씩 높아질 때마다 조기사망 확률이 7%씩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역시 란셋에 보고했다.
초미세먼지의 경우 현재 세계보건기구의 권고 가이드라인 농도가 25㎍/㎥인데 10~30㎍/㎥ 사이의 농도에서도 폐암발병이 증가한다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고 2013년 10월 발간된 란셋의 사설논문은 지적하고 있다.
미세먼지의 건강위협은 중국이나 인도와 같이 오염이 심각지역만의 문제가 아니고, 오염도가 낮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서유럽이나 북미지역의 거주자들에게도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정부가 2015년부터 적용할 예정인 초미세먼지 관리농도는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수준의 2배인 50㎍/㎥이다.
방광암의 경우, 다양한 수준의 직업적 노출이나 일반 환경의 대기오염 노출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수 연구논문들이 높은 농도의 대기오염에 직업적으로 노출된 사례에 집중하고 있어 일반 대기오염 노출과의 관련성에 대한 발암성을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이다.
국제암연구소 연구팀은 대기오염 동물실험 연구결과들도 모두 검토했다. 석탄이나 목재를 연소하여 가동하는 디젤엔진의 매연에 노출시키는 다수의 동물실험 결과 외에도 브라질에서 수행된 일반 환경의 대기오염 수준에 노출시킨 동물실험에서도 오염농도에 비례하는 폐종양의 발생 증가라는 연구결과가 검토되었다.
연구팀은 또 대기오염에 노출되면 체내에서 어떤 기전을 통해 암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지 검토했다. 그 결과 DNA손상 또는 변이, 염증반응, 면역체계 손상 및 암발생의 초기단계인 산화성 스트레스 반응, DNA 메틸화와 같은 문제들이 확인되었다.
국제암연구소는 대기오염의 농도와 성분이 지역과 국가별로 큰 차이를 보이지만 대기오염과 미세먼지가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세계 모든 지역에서 예외 없이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연구자 책임자인 커트 스트라이프(Kurt Straif) 박사는 "이제 대기오염은 일반 보건의료 차원의 중요한 위해 요인임은 물론이고 암 사망을 일으키는 가장 큰 환경요인"라고 말했다.
암 유발률 높이는 대기오염, 정부 대안 내놔야이번 발표가 나오기 오래 전부터 국제암연구소는 대기오염이 폐와 심장질환을 일으킨다고 경고해왔다. 2010년에 이미 22만3000명이 대기오염으로 인해 폐암으로 사망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동안에는 대기오염에 포함되어 있는 디젤매연, 솔벤트, 유해중금속, 먼지 등 구성 성분 및 물질 별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대기오염과 미세먼지의 구성성분이나 농도의 정도에 관계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암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이라고 분류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대기오염이라는 숲을 구성하는 오염물질인 나무 하나하나의 종류별로 관심을 보이는 경향에서 벗어나 숲 전체를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대기오염의 성분물질별 통제에 집중되어온 각국의 관련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국제암연구소 소장인 크리스토퍼 와일드(Christopher Wild) 박사는 "대기오염 자체가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된 만큼 국제사회와 세계 각국이 지체 없이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대기오염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대기오염과 미세먼지에 대해 이렇게 중요한 건강 위해 근거가 제시되었지만 한국의 환경부나 보건복지부 그리고 서울시 등 자치단체들은 대기오염 정책을 새롭게 제시하면서 이러한 정보를 적시하지도 않고 반영하지도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2013년 12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서울대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WHO가 대기오염과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사실을 아는지 묻는 설문에 대해 응답자의 34.9%만이 '알고 있다'고 답했고 두 배 가량인 59.9%는 '몰랐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