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조문객들지난 2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권우성
지난 일요일 대학생인 큰 아이와 안산 임시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마침 유가족분들이 들어오셨습니다. 부축하여 간신히 걷는 부모 곁에 검은 상복을 입은 형제로 보이는 학생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형제의 사진을 보는 학생의 들썩이는 어깨를 바라보며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기 전까지 나 자신, 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를 잃은 부모의 입장만 생각했습니다. 단장의 슬픔, 참척의 고통만을 생각했습니다. 할반지통(割半之痛)의 고통을 잊고 있었습니다. 몸의 반쪽을 베어 내는 고통이라는 뜻으로 형제, 자매의 죽음을 일컫는 말인 할반지통을 겪을 그 아이와 수많은 또 다른 아이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 까요.
그날 본 그 아이는 아마도 학교에서 인정하는 장례일이 지나고 이제 등교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금방 친구들과 선생님의 관심 밖이 되면서 혼자 내색 않고 괴로워 할 것입니다. 부모 앞에서 쉽게 울지 못할 것입니다. 주변인들이 모두 부모를 위로할 때 아이는 슬쩍 뒤로 물러나 훌쩍일 것입니다.
가슴 속에 불덩이를 안고 사춘기를 보내야 할 아이들이 걱정입니다. 부모보다 더 시급하게 위로하고 달래 줘야 하는 것이 어쩌면 아이들의 형제 자매들일지도 모릅니다.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012년 11월 열아홉 살 조카를 사고로 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조카의 페이스북에 친구들이 글을 남기고 수시로 조카가 있는 납골당에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조카의 생일날을 기념하고 시시때때로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기록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에게만 집중된 위로를 아이들에게 나눠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위로할지 깊이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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