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위에서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힘들다'는 자신의 무력함을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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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사건 당일 12세, 18세 일행 2명과 함께 채팅을 통해 가해자들을 만났고, 이들과 함께 여관에서 술을 마셨다. 피해자가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자, 가해자들은 차례로 피해자를 강간하기로 마음먹고 방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력을 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의 일행 중 한 명이 피해자가 있는 방으로 갔을 때 별다른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점, 피해 직후 피해자 스스로 옷을 챙겨 입고 나왔고, 이후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 피고인들에게 차비를 받았다는 점을 들어 무죄로 판시하였다.
성폭력은 폭행, 협박 등의 강제성이 동원된 성적행위로 정의되는데 문제는 이 강제성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이다. 이제까지 재판부는 가해의 행위나 피해의 정도로 강제성을 판단하기보다 피해자가 대응, 즉 '피해자가 심리적·물리적 반항이 불가능했는지 여부 또는 얼마나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였는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성폭력 진위여부를 판결하는데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재판부가 인정하는 '피해자다운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 단 하나의 이미지 속에서 '순수한' 피해자는 취약하고 무력한 '여성'이면서, 어떤 조건에서도 '끝까지' 저항하기를 택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술에 취한 12세 소녀가 재판부가 기대하는 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하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많은 경우 성폭력 피해자는 혼돈 속에서 자기 방식대로, 피해 당시 자신에게 닥친 폭력과 공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얼마나 더 커질지 모르는 폭력의 위협을 느낀다면,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가해자의 요구를 저항하기보다 수용할 수 있다.
한편 피해자가 당황하기보다 덤덤하게 반응하는 것은 상황을 최대한 안전하게 끝내려는 방법일 수 있고, 이는 분명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무기력하게 끌려다니거나, 대응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라고 사후 피해자가 자신의 대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혼돈스러운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물론 피해자가 자신을 방어하는 '최선의' 대응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재판부가 손쉽게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성폭력 가해 여부를 재고하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씻을 수 없고 회복할 수 없는" 상태라야 피해 인정?사법부는 사회 통념을 기준으로 성폭력 피해의 의미를 판단하고 피해자를 인정한다. 특히 성폭력피해는 남성의 성욕이 통제할 수 없고 해소돼야만 한다는 통념, 보호해야 할 성(아동과 순결한 여성)과 보호할 필요가 없는 성('꽃뱀')을 구별하는 통념과 연결된다. 이 통념에 부합하는 피해자다운 반응은 보호받고 인정받는 반면 그렇지 않은 다양한 반응들은 맥락에 관계없이 '피해자답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피해자답지 않은 반응은 더 나아가 피해자 역시 그 상황을 동의하고 유발한 것이라는 '피해자 책임론'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과거 성경험은 어떠한가', '평소 행실은 어떠한가', '가해자는 어떻게 알고 지냈으며', '왜 가해자와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었는가', '그때 무엇을 입고 술은 얼마만큼 마셨는가'라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뤄지는 질문들은 '사실확인'의 목적이라 하더라도 통념에 기반해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피해자들이 피해를 인정받거나 가해자를 처벌하려 할 때, 공권력을 가진 수사기관이나 재판기관의 판단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성폭력 상황이 자신이 야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재판부가 인정하는 '피해자다운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할 것을 강요받는다. 가해자와 성폭력에 관대한 사회문화에 분노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피해를 주장하는 모습이 아니라, "씻을 수 없는" 충격을 입고,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신체적 상처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것이다.
법정 위에서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힘들다'는 자신의 무력함을 증명해야 한다. 순수한 피해자, 취약하고 보호가 필요한 피해자를 가늠하려는 재판기관의 '피해자다움'의 잣대는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스스로를 무력하다 여기면서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를 습득하도록 만든다. 피해자들의 안정적인 삶을 지원해야 할 수사·재판기관이 오히려 '회복할 수 없는 피해자' 통념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피해자를 함구하게 만드는 논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