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환경단체 회원들이 수산물 수입금지조치 관련해 WTO제소를 검토하는 일본정부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희훈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이 일본산 수산물과 농산물이 안전한지 따져 물었다. 해양수산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부처는 '검사결과 모두 기준치 이하'라는 예상된 답변을 반복됐다.
이번엔 가공식품이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가공식품의 원료 중 후쿠시마 인근 8개현에서 만들어진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았고 국내 수입회사들도 제품에 이를 표기하지 않았으며 후쿠시마 사고 이후 오히려 수입량이 증가추세라는 내용이었다.
환경단체 회원들은 해당 제품을 가장 많이 수입한 네슬레와 코스트코 앞에서 항의했다. 빼빼로 데이(11월 11일)에 가장 잘 팔리는 초콜릿 과자제품도 일본수입처 원산지표시를 요구받았다. 해당 제과회사는 원료수입처가 3곳 이상이면 구체적으로 적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을 내세웠다.
일본 전역의 수산물이 오염됐고 특히 후쿠시마 인근에서 잡힌 수산물이나 생산된 농산물이 일본 전국으로 유통되고 있는데다, 이렇게 제조된 원료들이 수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원산지표시 제도는 형식적으로만 운영되고, 방사능오염문제가 언급되면 '기준치 이하 저선량은 괜찮다'는 논리가 반복된다. 후쿠시마가 아니어도 저선량 방사능은 곳곳에서 문제가 된다. 매년 10여 차례 이상 반복되는 원전고장이나 원전사고 때도 늘 한결같다.
지난 2012년 8월엔 한 환경단체가 영유아들이 먹는 분유제품에서 방사능 세슘이 검출됐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해당 분유는 해외의 깨끗한 자연에서 생산된 것이라며 비싸게 판매되는 제품이었기에 더욱 주목을 끌었다. 문제를 제기한 환경단체는 검출된 세슘이 기준치 이하의 미량이지만, 아기들에게는 미량도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국내산 분유에서는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시민들은 '어떻게 갓난아기가 먹는 분유에서 방사능이 나오느냐?'며 크게 놀랐고 생협회원들을 중심으로 항의에 나섰다. 서울시도 해당분유를 조사했는데 기준치 이하의 세슘이 미량 검출됐다고 밝혔다. 제조회사는 검출된 방사선량이 자연방사능 범위라며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일반 대기 중에서 검출되는 방사능이 모두 진짜 '자연' 방사능이냐고? 그간 수십 수백 번의 핵실험이 있었고, 체르노빌에 후쿠시마 사고로 얼마나 많은 '인공'방사능이 대기를 오염시켜왔느냐고? 아이러니한 현상이지만 방사능오염의 관점으로 보면 뉴질랜드의 넓은 초원에서 자라는 산양이나 젖소보다 좁은 우리에서 사료 먹고 짜내는 분유원료가 더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제조회사는 자사 이미지를 훼손당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문제점은 '저선량 방사능은 정말 안전한가?'라는 것이었지만, 해당회사는 환경단체의 표현방식을 문제 삼았다. 법원의 판단은 '기준 이하의 저선량은 괜찮다'는 논리에서 조금도 나가지 못했다. 환경단체는 8000만 원의 배상금을 물어야 할 처지에 몰렸고 분유제조회사와 화해절차를 밟고 있다.
원자력안전위는 기준치 이하라 안전하다 했지만...방사능이 검출되더라도 기준치 이하의 미량이라면 그냥 두어야 하는 걸까? 이 문제에 대한 좋은 참고 사례가 있다.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 기획의 네 번째 기사 '병원 CT 촬영, 이렇게 위험한 줄 몰랐다'에 자세히 소개된 내용으로, 한 시민이 서울 강북의 주택가 도로포장에서 방사능이 검출됐다며 신고한 사건이다.
당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기준치 이하라 안전하다고 했지만 주민들이 '어떻게 늘 다니는 도로에서 방사능이 나오느냐?'며 불안해했다. 문제가 커지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현장을 찾아 대책마련을 약속했고 해당구청은 100m 넘는 두 곳의 도로를 걷어냈다.
서울시 역학조사결과, 전체적으로 기준치 이하이긴 하지만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 등 일부 주민은 노출수준이 높아 건강영향을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대책이 제시됐다. 보수언론은 시민운동가 출신의 시장과 야권 구청장이 불필요한 행정낭비를 한다고 비난하고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기준치 이하 여부를 불문하고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상황이라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했다.
차분하게 진행된 역학조사과정을 통해 주민들의 우려가 해소되었다. 서울시는 생활보건과를 만들어 생활 속 환경보건문제를 전담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한편 요지부동의 '기준치 이하 안전논리' 때문에 걷어낸 도로포장폐기물이 방사능폐기물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 이리저리 옮겨지며 한동안 방치되었다.
저선량 방사능은 정말 안전한 것일까? 앞서 다양한 예를 들었듯 우리 생활주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저선량 방사능노출이 중첩돼 이루어진다. 서울아산병원 핵의학과 류재광 과장은 "방사선문제를 다루는 관련 학계의 주류는 '저선량이라도 영향은 있다'는 내용을 인정하면서도 '그리 위험한 정도는 아니고, 여러 가지 용도를 고려할 때 오히려 유익하다'는 논리를 앞세운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유럽 쪽 학자들이 저선량 방사능의 건강영향문제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한다.
"내부피폭 모델, 일정 부분 과소 평가되고 있다"류재광 과장이 지난 3월 8일 서울대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의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을 Q&A로 정리했다.
Q. 저선량 방사능의 건강 영향문제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면서 유럽쪽 학자들이 제기하는 내용은 어떤 건가요? A. 유럽방사능위험위원회(ECRR)가 낸 보고서는 그동안 간과됐던 내부피폭 효과를 적극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보고서의 핵심 요지는 기존의 주류학계와 국제기구의 건강영향평가는 주로 외부피폭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내부피폭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Q. 내부피폭과 외부피폭은 어떻게 다른가요? A. 네, 외부피폭은 방사능이 공기와 물과 같은 매질을 통해 전달된 노출을 말하고 내부피폭은 신체 안으로 들어온 방사능이 밀도가 높은 조직을 통해 2차 광전자 발생, 즉 2차 피폭을 일으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Q. 조금 더 알기 쉽게 설명해 주세요. A. 네, ECRR보고서에 나온 그림을 보며 설명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