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양역동정호를 품고 있는 웨양
신한범
우선 외국인임을 밝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안녕, 나 한국인이야. 우리 일행이 5명인데 모레 저녁 구이양가는 루안워(軟卧, 연와) 표를 원해.""여권 가지고 있어?""여기."역무원이 컴퓨터로 표가 있음을 확인한 다음, 여권을 뒤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엇을 찾는지 알 수 없어 기다리고 있는데, 컴퓨터 화면에 '여권번호' 기재하는 곳이 보입니다. 제가 여권에 있는 여권번호를 가리켜도 역무원은 반응이 없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역무원이 상급자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두 사람이 우리 일행 다섯 명의 여권을 다시 검토하더니 하나를 제게 보여줍니다. 그곳에는 몇 년 전 중국 여행을 할 때 사용했던 유효 기간이 지난 개인 비자가 있습니다. 컴퓨터에 기재하는 것은 여권번호인데 역무원은 비자를 찾고 있습니다.
단체 비자를 보여 주었습니다. 다섯 명 이상이면 단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별도에 용지에 기재된 단체 비자를 역무원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Group Visa, 团体签证"라고 영어와 중국어로 이야기해 보지만, 여권에 부착된 비자만 찾고 있습니다.
소요시간이 길어지자 뒤쪽에 줄을 선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몇 사람은 앞으로 와서 역무원에게 항의해 보지만, 역무원은 기다리라는 말뿐입니다. 30여 분쯤 시간이 지나자 역무원도 포기하였습니다. 비록 유효기간이 지난 것이지만 여권에 개인 비자가 있는 사람은 비자번호를, 없는 사람들은 여권번호를 기재하고 표를 출력하였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지혜가 생긴다다섯 명이 함께하는 여행이라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이 되었습니다. 제가 기차표를 발권하는 동안 가이드북을 보며 일정을 짜고, 동정호(洞庭湖) 가는 시내버스를 알아보는 등 자연스럽게 분업이 되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지혜가 아우러져 좋은 여행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