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이마을 위령비위령비는 곧 학살당한 이들의 무덤이다. 33미터 위령비 아래, 380명의 한 마을사람들이 모두 잠들어있다.
황윤희
빈딘성은 맹호부대 주둔지이면서, 전쟁 당시 한국군의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현재까지 8건의 양민학살 사건이 공식확인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총 1581명의 양민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임서영).
또 그 중 고자이 마을은 단 1시간 만에 마을의 모든 주민 380명이 한꺼번에, 또 야만적인 방식으로 학살당한 곳이다. 1988년 베트남 정부는 이곳을 역사적 유적지로 공식 지정했다. 민간인 학살의 전형적이고도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고자이 마을의 학살이 일어날 당시 여성들은 집단윤간을 당한 뒤 죽임을 당했다. 어린아이는 사지를 찢어 불에 산 채로 태우고, 피신한 방공호에도 짚불을 붙여 던져 사람들이 그 안에서 타 죽었다. 이는 안내판에 활자로 기록된 내용이다.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가 몰살당한 마을에 다시 사람이 찾은 것은 보름 뒤였다. 온 마을에 시신 썩는 악취가 풍겼다. 썩어 문드러지고 짐승에 의해 훼손당한 시신을 어찌할 수 없어, 사람들은 지금의 위령비가 선 자리에 그대로 매장했다. 그러니 33미터에 달하는 이 위령비는 곧 학살당한 이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위령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966년 2월 26일, 미제국주의의 지휘 아래, 남조선 꼭두각시 군인이 380명의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했다.'한국군 증오비이며, 동시에 죽은 자를 위한 위령비이지만 베트남 인민들은 여기에 주적 '미국'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었다.
일행들은 위령비 앞에 참배하고 향을 꼽고 인근 마을에서 사온 국화를 한 송이씩 놓았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현지 주민 몇 명이 멀찍이서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향 연기가 그날의 참혹한 풍경을 우리 내면으로 옮겨오고 있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훌쩍훌쩍 울었다. 30도가 넘는 땡볕 아래 고요히 퍼지는 울음이 죽은 자에 대한 연민인지, 살아남은 자들의 회한인지 구분키 어려웠다.
위령비에는 그날 학살당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반복되는 글귀가 있다. 'VO DANH.' 무명씨라는 뜻이다. 베트남에도 갓난아이에게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 풍습이 있단다. 귀신이 잡아가지 말라는, 우리와 꼭 같은 풍습이다. 번역하자면 '개똥이'쯤 될 그 어린아이의 이름이 위령비에서 무수히 반복되고 있었다. 나열돼 있는 그 무명씨들 앞에서 과연 이것은 용서되고 치유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의심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