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공부중인 학생
St.John's College
총장과의 면담에까지 이른 나의 3학년 돈래그
그렇다면 "2학년 특별 돈 래그까지만 무사히 통과하면 한숨 놓을 수 있나?" 그건 또 아니다. 나 역시 2학년까진 큰 어려움 없이 돈 래그를 마쳤다. "어렵다는 3, 4학년 과정을 거칠 능력이 나에게도 있다고 생각하신 거겠지? 야호!"하면서 자뻑(?)에 빠져 3학년에 진학했다. 그러나 1학기를 마치고 돈 래그 결과 결국 마지막 관문이라는 총장에게 불려가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말았으니….
내 경우는 이랬다. 3학년이 되자 정말 소문대로, 아니 소문보다 훨씬 더 수업들이 힘들어진 것이 큰 요인이었다. 비중이 너무 커진 수학, 과학 과목 때문에 문과 성향이던 나는 "2년간 세인트 존스가 (철학, 문학만을 공부하는 학교인 척) 나를 속였다!"하고 통탄을 해댔다(괜히 학교 탓).
3학년은 정말 차원이 달랐다. 매일 매일의 수업이 도전의 연속이었다. 하루같이 좌절을 겪었고 힘들어 하며 3학년 한 학기를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1학기를 마무리짓는 돈 래그를 하게 됐다. 평소와 다름 없이 격려도 받고, 가혹한 평을 받기도 하며 구구절절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주 중요한 질문 하나가 나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 학교에서 튜터를 해오신, 나이가 많은 튜터의 질문이었다 "미스 초, 너는 이 학교에서 행복하니?" 그 질문을 듣자마자 난 갑자기 멍- 해졌다. 그 질문을 시작으로, 보통 한 학생당 15-20분이면 끝나는 돈 래그가 1시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이제 튜터들의 토론 주제는 '미스 초는 세인트 존스에서 행복한가'가 되었다. 항상 핵심적이고 좋은 조언을 해주던 튜터가 말했다.
"제가 봐 온 미스 초는 조용하지만 진지한 학생입니다. 수업 준비, 페이퍼 등 빠지는 것 없이 제출하고 성실히 공부하는 학생이거든요. 그런데 미스 초는 우리 학교 커리큘럼 특성상 너무 힘든 공부를 하고 있어요. 미국 학생들조차도 버티기 힘든 수업들인데 외국인 학생으로서 언어적인 어려움까지 더해지니까요. 그런 이유들로 미스 초는 그동안 참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 생각에 미스 초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학교에 가서 다른 방식으로 공부한다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그동안 난 수업에 있어서 문제를 겪고 있으면 튜터들과 이야기해 보고 조언 듣는 걸 좋아했는데, 대화 중 가슴 속 꽁꽁 숨어있던 서러움이 터지며 눈물바람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봐 오신 튜터들이었기 때문에 돈 래그 중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었다.
긴 토론이 이어졌지만 튜터들은 쉽사리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고 결국 내 문제는 총장에게로 넘어가게 됐다. 총장까지 만날 상황에 놓이자 나는 예상치도 못했던 위기상황(?)에 학교를 계속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심각하게 들게 됐다.
총장과의 면담 날짜를 기다리는 며칠간 나는 폭풍의 언덕에서 비바람에 휩쓸려 곧 날아가버릴 사람처럼 내 스스로를 붙잡으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돈 래그 동안 오고 간 '객관적 입장에서 본 내 3학년 1학기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마음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며칠 후, 총장을 만났다. 총장은 돈 래그 내용을 기록한 '돈 래그 리포트'를 보더니 내 문제가 자신에게까지 넘어오게 된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셨다. 일반적인 학생의 문제(에세이, 결석 등)와는 다른 경우였기 때문이다. '미스 초는 행복한가?'에 대해 나는 며칠간 정리한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제가 이 학교의 특별한 커리큘럼상, 또 제 언어나 성격적인 문제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너무 힘들고, 울기도 많이 하고, 매일 매일의 수업들이 저에게는 큰 도전이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군분투를 사랑하고, 즐긴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을 통해 더 강해지고, 더 배움을 얻을 수 있다면 이 학교에서 계속 공부하는 것이 저에겐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너무나 감사하게도, 총장님은 내 말에 동의해 주셨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든 학생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하셨다. 다른 학교로 편입을 가는 쪽을 선택하는 것도, 남는 쪽을 선택하는 것도 그 어떤 것도 정답은 없다고.
학생이 선택하는 그것이 정답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계속 노력해 보자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 후 총장님은 3학년 2학기에 대한 조언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나는 우여곡절 끝에 3학년 1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1학기 돈 래그와 총장과의 대화는 내가 나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하고 스스로 답을 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미스 초는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과 스스로 결정한 그 마음을 간직한 채 나는 3학년 2학기를 보냈고 학기 말, 마지막 돈 래그인 콘퍼런스를 했다.
내 스스로 나를 평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