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쇠망사>1-6권(에드워드 기번, 윤수인·김희용 외 옮김)
민음사
로마사에 관심 있는 사람치고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민음사, 전 6권)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로마제국과 관련한 '불후의 명작'이다.
<로마제국쇠망사>는 하룻밤 내에 소설 읽듯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기번이 1776년부터 1788년까지 12년에 걸쳐 전 6권으로 간행한 방대한 볼륨의 대작이다. 이 책은 로마제국이 쇠퇴해 가는 과정을 아주 실증적이면서도 유장한 문체로 다룬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 그 일부만이 같은 이름의 책으로 발간됐을 분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이 책 전권이 드디어 완역됐다. 몇몇 젊고 유능한 전문번역가들에 의해 이 책 6권이 모두 우리 말로 번역된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속속히 알 기회가 온 것이다. 이 번역은 연구자들의 로마사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쇠망사>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로마사 연구에 기본 중의 기본자료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쇠망사>가 로마사 연구의 가장 중요한 자료 중의 하나라고 할지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책이 로마사 전체를 다룬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은 아쉽게도 로마의 기원(기원전 753년)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약 900여 년은 다루지 않았다. 그러니 로마의 왕정 및 공화정 그리고 제정으로 이어지는 로마사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이 책은 팍스 로마나 시기라고 하는 오현제 시대, 그중에서도 트라야누스 황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서로마제국의 멸망, 동로마제국의 성립, 신성로마제국의 건국 그리고 동로마제국의 멸망(1453년)까지 약 1400여 년의 역사를 기술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기번은 로마사를 쓰면서 그 주제를 쇠망(decline and fall)으로 정했는지' 궁금했다. 기왕 로마사를 쓴다면 로마제국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공화정기 역사와 그 이후 극적으로 만들어지는 제정의 역사를 쓰지, 왜 하필 로마의 쇠퇴기를 썼는가였다.
아마도 역사가로서 기번은 이런 기본적 질문에 답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토록 찬란했던 로마제국이 왜 쇠퇴해 결국 멸망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을까? 그런 이유로 기번의 로마사 기술은 로마제국이 가장 번성했던 팍스 로마나에서 시작한다. 일단 로마사의 정점을 설명하고 그러한 로마제국이 왜 점점 하강 국면을 맞이 하지 않으면 안 됐는지를 기술하는 게 그의 로마사 기술의 기본적 방향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한 이유나는 이 책을 통해 로마제국의 기독교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정리했다. 시오노 나나미도 이 부분에 큰 영향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기독교에 대한 기술은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에서 보이는 기번의 생각과 많이 중첩되기 때문이다.
기번은 로마제국의 기독교 문제를 신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철저히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도대체 로마에서 기독교는 어떤 종교였는지, 왜 그들은 박해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등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이라는 관점에서 기술한다. 종래 로마의 기독교 박해는 기독교 신앙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특한 것이라는 것이 서구세계를 지배한 관점이었는데, 기번은 그런 신학적 관점을 완전히 배제했던 것이다. 이것은 역사를 사실에 기초해 실증적으로 접근하는 근대 역사학의 출발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왜 기독교를 박해했을까. 기번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고대의 종교 화합은 고대 국가들이 서로의 종교 전통과 의식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한 것을 통해 유지되었음을… (중략) 따라서 이런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 종교적 지식의 배타적인 독점권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예배를 제외한 다른 모든 예배 형식이 신성모독이며 우상 숭배라고 멸시하는 교파가 나타난다면, 전체 공동체는 당연히 분노하여 이에 대항할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예상해 볼 수 있다."(<로마제국쇠망사1> 622쪽)역사적 관점에서 기독교가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은 것은 '기독교의 배타적 신앙관에서 나온 필연적인 결과'였다는 이야기다. 이런 문제의식은 기독교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매우 불경한 주장일지도 모르지만, 역사가 입장에서는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역사는 사실에 기초한 과학이지, 믿음에 기초한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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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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