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안에서 농성할 때. 콜밴 연습의 흔적인 기타와 악보.
최규화
기타와 보컬의 이인근, 또 다른 기타의 장석천, 베이스의 김경봉, 그리고 카혼의 임재춘. '콜밴'이라는 콜텍 해고노동자들의 밴드는 2011년 11월에 만들어져 그해 12월 28일 홍대 앞 클럽 '빵'에서 첫 공연을 선보인 이후 오늘까지 유지되고 있다. 소셜 펀딩을 통해 악기구입비를 마련했고,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지지의 마음은 '콜밴' 결성에 응원이 되었다.
작년 4월부터 콜밴은 매주 월요일 저녁 8시부터 연습을 한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클럽 빵에서 선보일 신곡을 첫째 주 월요일에 정하고, 그 뒤 3주 동안 연습해서 빵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 제의를 다 소화하지 못해 거절하느라 멤버들이 송구스러워 하는 모습을 간혹 보기도 한다.
이들은 설명이 필요 없는 뻣뻣한 중년들이다. 당연히 연주는 그리 훌륭한 편이 아니다. 실력은 늘어왔지만, 여전히 무대에서 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콜밴의 상징(?)이다. 그래도 관객들은 "앙코르"로 화답하며 관객과 공연자들 사이의 독특한 유대관계를 보여준다.
작년 4~6월은 콜밴의 위기였다. 연습 시간은 대화 없이 거칠었다. 아이돌 그룹에서나 나온다는 소위 '멤버 불화설'이 솔솔 피어날 무렵이었다. 2월 1일 공장 안에서 농성하던 노동자들이 쫓겨난 이후, 공장 앞에 새로 만든 천막 농성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농성장은 한산해지는 날이 많았다. 매일 진행되던 촛불문화제를 주 2회로 줄였지만 빈자리는 늘어났다.
또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곳곳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더욱 자주 벌어지고 있었다. 대한문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콜밴의 멤버들이 연행되기도 했다. 콜밴 운영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경우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흥이 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연습 도중 코드를 잘못 잡거나, 박자를 놓치면 과도한 핀잔들이 오고 갔다. 연습이 중간에 끊기고 애꿎은 담배연기가 자욱해지도록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곤 했다. 작년 4월부터 콜밴의 연습을 돕기 시작한 '옛정서 발굴밴드, 푼돈들'은 이 시기를 '대략 난감'의 시기로 기억한다.
하지만 유랑문화제가 탄력을 받아가고, 마침 해고노동자들이 출연하는 연극 <구일만 햄릿>이 준비에 들어갔다. 여러 뮤지션들과 '콜트 불바다'라는 거리공연을 하면서, 서로를 할퀴는 연습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콜밴의 연습시간은 차츰 평화(?)로워져 갔다.
돌아보니 콜밴은, 또 다른 무대를 만들어내며 위기를 극복해왔다. 해고자들은 농성이 싫어 도망가려다가도 콜밴 일정 때문에 마음을 바꿔 되돌아온다. 콜밴이 농성으로 지친 일상에 활력을 주기도 하고, 끈기를 부여한다. 시민들의 관심이 콜밴에게 격려가 되고, 콜밴이 농성에 생기를 불어넣고, 그 콜밴이 농성의 딜레마가 되기도 하다 콜밴에 대한 인기를 확인하여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선순환.
감히 나는 이 선순환 앞에 또 다른 수식어를 붙이고 싶다. "위대한"이라는. 음치와 박치는 있어도 음악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이들만큼 절절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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