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폐업 후 텅 빈 공장.
최규화
그는 7년차 해고노동자가 아니라 '기타 장인'이었다임재춘 조합원과 술을 한잔 걸쳐본 사람이라면 그가 풀어내는 기타에 관한 일장연설과 마주한 적이 있을 것이다(적당히 과장이 가미된 임재춘만의 술주정. 그리하여 그의 별명은 '임구라'가 됐음). 기타의 종류, 최근 출시되는 기타 상품들과 그 각각의 소리 평가까지.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렇구나", "와~ 그래요?" 하고 추임새를 넣어준다.
그러나 기타를 다루지도 못하고 더군다나 기타를 만들어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그 얘기가 그 얘기 같고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한 귀로 흘리곤 했다. 다만 기타 이야기를 하는 동안의 임재춘은 해고 7년째를 넘어선 농성자가 아니라 신명난 장인과도 같아 그 모습을 즐길 뿐이었다.
이 글은 9회차 '콜트기타 불매 선언 유랑문화제'를 위해 쓴 글이다. 농성일기는 글감이 떨어져갔고, 세 번째로 연재글에서 밝힌 그의 주부 우울증이 꽤나 길게 이어질 무렵이었다. 어떤 주제를 잡더라도 비슷한 넋두리가 반복되곤 했다. 연재글에 소개되지 않은 농성일기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천막생활을 하면서 외롭고 쓸쓸한 나날들. 일상생활은 똑같고 가족과의 만남도 힘들고, 친구들과 대화도 못하고, 좋아하는 술도 제대로 못 먹고,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없다. (중략)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지만 내 나이 오십. 너무 할 수 있는 게 없다. 오늘도 이렇게 푸념을 하여 본다. (2013년 6월 21일자 '임재춘의 농성일기' 중)나는 그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기타 이야기를 글감으로 제안했고, 예상대로 그는 빠르게 글을 써내려 갔다. 이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그는 다시 기타를 만드는 장인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 글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내가 들은 임재춘의 기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솔깃하게 들은 이야기는 한국의 사계절과 기타의 상관관계에 관한 것이다. 기타는 습도나 온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사계절이 있는 한국에서 기타를 만들면 계절마다 기타의 소리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복직을 요구하지만, 한편으론 다채로운 기타의 소리를 위해 한국의 기타 공장은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 이야기는 거짓말 안 보태고 다섯 번 이상은 들었는데, 들을 때마다 쨍한 흔들림을 주는 말이었다. 저임금에 창문도 없이 먼지로 가득했다는 그 공장의 생활이 지겹지도 않은가 싶다가도, 기타에 대한 이 해고자의 애정이 술기운에 담겨 '네버엔딩 스토리'로 반복돼도 그만하라 말할 수 없었다.
술기운이 올라 기타 이야기를 풀어놓는 임재춘은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 속 가야금 장인과 많이 닮아 있다. 무기는 무기를 낳고 음악은 음악을 낳는다는 소설의 맥락처럼, 콜트 자본이 악기를 이윤의 무기로만 여길 때 그 결과는 너무나 자명한 것이다. 회사는 공장을 없애버림으로써 숙련 노동자들의 체화된 기술을 제거했다. 또한 계절의 가치를 제거하여 음악적 다양성을 제거한 셈이다. 슬프고도, 비루한 이야기이다.
언젠가 콜트-콜텍 해고자들이 만든 밴드 '콜밴'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장석천 조합원과 기타를 사러 간 일이 있었다. 콜트 기타를 제외하고, 또 콜트 자본이 상호를 바꿔 출시하는 기타들을 제외하고 나니 고를 수 있는 기타가 거의 없어 당황했다.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자신이 몸담고 있던 회사의 상품을 거부해야 하는 상황, 지난 노동에 대한 기억이 술주정으로 둔갑하여 반복되는 상황은 모두 매한가지, 오늘날 노동의 현실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공유하기
한때 '한국 재계 120위 부자', 그의 놀라운 실체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