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항일전적지’ 나무 비(1999. 8. 6.). 이 비목은 이제 지상에서 볼 수 없다.
박도
1999년 8월 6일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백두산 일대 항일유적지 답사에 나섰다. 우리 답사단 일행(일송 김동삼 의사 손자 김중생 선생, 임시정부 국무령 이상룡 증손 이항증 선생, 그리고 필자)은 연길 연변대학 빈관(숙소)에 거점을 차리고 그 일대 항일유적지를 답사하고 있었다. 그날 여정은 매우 긴지라 동포 한용운 기사의 차를 빌려 타고 아침밥도 거른 채 이른 새벽 연변대 빈관을 출발했다.
그날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 용정 서전서숙 유적지, 어랑촌, 천수평 전적지를 답사하고 부지런히 청산리 전적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일대는 주민도, 집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일제가 청산리 전투에 패전한 보복으로 그 일대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모두 학살했다는데, 그때까지도 집 한 채 없는 썰렁한 산야였다.
이름 없는 충혼들이 잠든 청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