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동 탑골공원 근처 식당가에선 2000원 정도면 한 끼 식사가 가능하다. 주머니가 팍팍한 이들에겐 낙원동이 천국이다.
김대홍
몇 해 전 금요일 낮, 탑골공원 근처 낙원동을 일부러 찾았다. 그 전 낙원극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식당에 들렀다. 이름은 부자촌이었다. 낙원동에 부자촌이라니, 어울린다 싶었다. 그 식당은 2004년 문을 열었단다. 12~13명 정도 들어서면 가득 찰 정도로 좁은 곳이었지만 빈자리가 없었다. 손님의 연령대는 높았다. 분위기로 보아 50~60대로 보였다.
그곳 국숫값은 1000원이었다. 낙원동 식당들은 세상 물가와는 동떨어진 가격대를 제시했다. 음식 가격만 따지고 본다면 지리산 청학동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이상한 일이었다.
-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싼 가격이 가능한 거죠?"식당을 하기 전 근처 동네에서 유통업을 했어요. 재료를 싸게 가져오는 법을 알지요."
- 그렇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낮아요.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조금 더 올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장사 아닌가요?"여기는 싼 동네예요. 가격 올려봤자. 최대 30% 정도고. 그렇게 올려봤자 뭐 하겠어요. 그냥 이 가격 받으면서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오게 하는 게 나아요."
우리 일행은 셋이었다. 세 명이서 국수 한 그릇씩 시키고 막걸리와 맥주를 한 병씩 시켰다. 가격은 8000원.
- 안주나 다른 걸로 돈을 버시나 봐요. 국수는 이윤이 안 남죠?"그래도 남아요(웃음)."
당시 인터뷰를 했던 식당은 낙원동의 정서를 대변했다. 낙원동의 묘한 정서는 2008년 부자촌 주인이 했던 행동에서 드러난다. 당시 2000원 하던 콩국수를 1000원으로 내렸다. 3000원 하던 음식은 2000원으로 내렸다. 서민들 살림살이가 나빠졌으니 음식 가격을 내리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단다. 일면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쉽게 이해하긴 힘든 일이다.
낙원동에서 싼 음식점이 몰린 곳은 종로17길이다. 탑골공원 동쪽 담벼락 쪽에 몰려 있다. 탑골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주고객이란 뜻이기도 하다. 고객이 음식값을 결정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종로17길 식당들의 음식값이 싼 것은 탑골공원 방문객이 주로 어르신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탑골공원은 언제부터 서울지역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을까. 1968년 4월 9일 치 <경향신문>에 '노인들의 유일한 벗인 파고다공원(탑골공원의 옛 이름)'이란 기사가 나오는 걸 보면 그 역사가 꽤 깊다. 주고객이 어르신들이고, 주로 주머니가 팍팍한 어르신들이라면 주변 음식점들도 고객 맞춤형 음식을 내놔야 했을 것이다.
1961년 5월 18일 치 <동아일보>에는 '탑동공원(탑골공원의 옛 이름)의 24시'란 기사가 실렸다. 꽁초를 주워 생계를 잇는 사람을 다뤘는데, "백 환짜리 조반을 마치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물가를 고려해서 유추해보면 지금 가격으로 대략 1000원에서 1500원 정도 하는 식사다. 온달치킨센타 대표인 홍성운씨가 한 매체에서 밝힌 이야기를 살펴봐도 탑골공원 일대에서 다른 지역과는 다른 식당가격이 매겨졌음을 알 수 있다.
"형님은 설렁탕이 4000원 하던 시절, 파고다공원 노인들에게는 설렁탕을 1200원에 팔았다."(<한겨레> 2012년 5월 23일)가난한 어르신들이 많이 찾다 보니 무료 급식이나 이발도 종종 이뤄졌다. 1990년 서울시가 후원하는 경로식당이 처음 문을 연 곳 또한 낙원동이었다. 이런 조치들까지 겹쳐 낙원동엔 자연스럽게 '낙원동 가격'이 만들어졌다.
건국대·단국대·국민대가 태어난 곳... 한때는 부자들이 노닐던 명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