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아롬과 나흘라귀여운 목소리와 상대방을 웃게하는 매력에 이보가 '스폰지밥'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아롬과 '할머니' 나흘라
김산슬
우리는 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순간 멍해졌다가 다시 깔깔거리며 서로를 껴안고는 캥거루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사람들도 즐겁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쳐준다. 사실 이전에도 한 번 꼭 같은 일이 있었다. 그것도 이곳 마디 역 앞에서. 그때는 처음 겪는 박수세례에 그들과 어울려 신나게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여전히 이집트는 그대로였다. 그들의 이토록 사랑스러운 오지랖까지도.
그날 저녁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중국음식을 먹었다. 한국을 떠난 뒤 처음 먹는 중식이었다. 요르단에서 우리가 사는 곳은 수도와 멀리 떨어진 곳일 뿐더러 요르단은 이집트보다 물가도 훨씬 비쌌기 때문에 서양 음식이나 아시아 음식을 먹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맛있는 데다 푸짐하고 값싼 중국식 저녁 만찬은 길거리 음식에 지쳐가던 우리에게 활력이 되었다.
이보 또한 역시나 아롬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말이라면 누구에게도 단 한 마디도 지지 않는 그의 말문을 막히게 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게 만든 건 아롬이 처음이었다. 이보는 그녀에게 '스펀지밥'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고, 언제나 수많은 에피소드를 달고 다니는 아롬이의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던 우리의 수다는 자정을 향해가는 시계를 보고서야 하는 수 없이 중단됐다. 그렇게 길었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만 아주 깊은 잠에 들어버리고 만 거다.
피라미드에 가기 싫었던 이유얼른 이보에게 전화를 해서 이제야 일어났다고 얘기한 뒤 나는 따로 이동해서 피라미드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기자 피라미드를 가는 방법은 총 두 가지다. 택시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는 것인데,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방법은 지하철을 이용해 기자(Giza) 역까지 이동한 후에 거기서 피라미드로 가는 택시를 잡아 흥정하는 방법이다.
피라미드를 보러 가는 이들은 99퍼센트가 관광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때문에 피라미드로 향하는 길목부터 모든 것이 '관광지 가격'이다. 지하철역에서 피라미드까지 가는 길은 보통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리는데, 생각보다 먼 거리여서 관광객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기 딱 좋은 곳이기도 하다. 미터기가 있는 택시를 타도 조작을 하면 그만이고, 미터기가 없는 택시를 타면 거리만큼의 가격을 예측할 수 없으니 또 요금 폭탄을 맞기 십상인 거다.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정 많은 이집션과 수다를 떨며 '살아있는' 21세기의 이집트를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천하의 사기꾼들을 상대해가며 소리 지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그 곳에 가서 파라오의 위엄 따위는 느낄 수 없게 된 지 오래인, 철저히 관광화 되어 이미 '죽어버린' 이집트를 봐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게 피라미드는 맛 없는 피자의 가장자리처럼 이집트의 가장 덜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기자 노선으로 환승을 하려 기다리는데, 반대편 승강장에 붙어있는 이집트 민주화 혁명에 관한 광고판이 내 시선을 끈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그 앞에 앉아있던 사내 두 명이 손을 흔든다. 내가 자신들을 쳐다보는 줄 알았나 보다.
내가 웃으며 손을 흔들자 그들은 내 화답에 이번엔 미소와 함께 더 큰 손짓으로 화답한다. 혼자 지하철을 기다리며 바짝 긴장하고 있던 몸이 이완되면서 내 마음도 다시 사르르 녹아내린다. 낯선 이방인의 인사 한 번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 친밀함으로 다가와 이방인의 얼굴에도 미소를 띄게 하는 곳, 내가 사랑하는 이집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