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들의 금요일 예배금요일 아침, 좁은 골목 인도 앞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다.
김산슬
반대로 나는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고 애쓰며 살았다. 그리고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는 그것을 스스로에게 납득 시키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때의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내 손을 떠난 뒤 혹여 그 결과가 원하는 것과 다르다 해도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갈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나는 짧고 길었던 여행과 만남을 통해, 세상에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일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그리고 모든 일은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며 더디게 배워 나갔다. 나쁜 일이 닥쳐도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감사할 줄 알고,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 그저 그 또한 인생의 한 부분으로 끌어안을 줄 아는 '알 함두릴라'와 '인 샤알라'로 돌아가는 무슬림들의 삶.
2년이라는 시간을 그들과 함께 하며, 어느덧 내 입에도 찰싹 붙어 버린 마법의 주문 같은 감사와 순종을 담은 그 두 마디가 어쩌면 이집트인들이 그들의 고된 삶 속에서도 우리보다 더 잘 웃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점점 골목이 시끄러워져 온다. 기념품 상점의 수도 눈에 띄게 늘어난다.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와 손짓들의 횟수가 잦아진다. 드디어 아프리카 최대의 시장, 칸엘칼릴리의 입구로 온 것이다. 교육을 담당하는 모스크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었기로 유명한 알 아즈하르 사원도 보인다. 해질녘 성벽을 지나 꼬불꼬불 길을 걸어 어떻게 이어졌는지도 모르게 장사꾼들로 붐비는 이집트를 다시 맞이하자니, 지난 두 시간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이틀간 여행을 하다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또 다른 모습의 '진짜' 카이로로 돌아온 것이다.
"오늘, 당신들을 만나서 너무나 반가웠어요. 당신들이 떠나기 전에 우리가 한번 더 볼 수 있을까요?" "신께서 원하신다면요, 인 샤알라. 당신을 만난 건 우리에게도 행운이었어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곳들이에요. 칼리드, 고마워요.""인 샤알라. 이집트를 사랑해줘서, 내가 더 고마워요. 피라미드에 있는 사기꾼들만 보고 이집트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아 줘서. 그리고 소피, 당신의 심장은 정말 메이드 인 이집트인가 봐요. 여러분 덕분에 너무나 뿌듯하고 행복했던 하루였어요. 신이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길."우리는 마주 웃었다. 우리 모두는 안다. 지금 칼리드가 건넨 애프터 신청이 진심이라는 것을. 하지만 또한 우리 모두는 안다. 이곳은 모든 것이 인 샤알라로 돌아가는 '아랍'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신이 원하면 우리는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만나지 못해도 그 또한 신의 뜻이기에 그렇게 흘러가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 만남이 마지막이 될 확률이 더욱 높다는 것 또한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와의 인연을 간직하고 싶어, 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택시를 직접 잡아 기사에게 흥정까지 해놓고서는 "내 친구이고 이집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니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잊지 않는다. 사람 좋아 보이는 택시 아저씨는 "메쉬메쉬(알았어요 알았어)"하며 문을 얼른 닫으라며 손사래를 친다. 택시가 출발하자, 우리는 몸을 뒤로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너의 도전에 행운을 빌어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칼리드를 만나지 못했다. 그를 만나려 계획을 바꾸기엔, 나를 기다리는 오랜 이집트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주었고, 그는 나의 두번째 이집트 여행에서 하나의 큰 기억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 돌아온 뒤 9월의 어느 날, 그에게서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Your sentence on your id card changed my life. So I decided to travel next week to Saudi arabia for new job there. I will try to know. Thanks ghada," 네 명함에 있던 문장이 내 삶을 바꿨어. 난 다음 주에 새로운 일을 찾아 사우디아라비아로 갈 거야. 무엇이 있는지, 가보기 전에는 모르니까. 고마워 소피.내용인즉,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던 그에게 내 명함에 새겨진 좌우명(You will never know until you try, 매 순간 후회 없이)이 눈에 띄었고, 그는 평생을 머물던 이집트를 떠나 새로운 세상을 향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우선은 사우디에서 직업을 찾아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그 문장은 칼리드에게 우리가 함께 했던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고 말했다. 오랜 여행과 경험으로 인한 삶의 지혜가 묻어나던 이보의 말들, 할머니라는 별명에 걸맞게 속이 깊고 현명한 나흘라, 그리고 자신이 보여준 숨겨진 카이로를 보고서 놀라워하던 우리를 보며 느꼈던 이집트 건축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까지. 세 시간 남짓했던 찰나의 순간이 서로의 인생에 큰 발자국을 남겼던 것이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힘들었던 사춘기 시절 나를 지탱해준 그 좌우명이, 첫사랑으로 인해 처음 배운 그 깨달음이, 누군가의 삶을 또 한 걸음 내딛게 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그의 앞길에, 처음 떠나는 그 길 위에 행운이 있기를. 좋은 인연을 만나고, 다신 없을 순간과 마주하며 인생이 알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기를. 그 속에서 작은 것으로 감사하는 행복을 맛보기를. 떠난 그 발걸음을 후회하지 않기를. 그리고 힘들 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다는 걸 잊지 말기를.
그리고 그의 메시지는 한국에 돌아온 뒤 미래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다 헤매다 결국 뙤약볕 아래 풀처럼 무기력함에 시들시들 쳐져 있던 내게 또 다른 힘으로 돌아왔다. 감사함과 응원을 담아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Good luck to you. (네게 행운을 빌어).여행 팁: 칼리드가 우리를 데려간 사원의 이름은 'Masjed alhakm be ammr allah'이라고 한다. 칸엘칼리리 시장과 인접한 지역이지만 워낙 조밀한 골목들이 밀집해 있어 정확한 위치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또한 사원에 들어갈 때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안된다. 긴 바지나 긴 치마를 착용하도록 하고 머리는 스카프나 손수건 따위로 가리고 들어가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관광화되지 않은 일반 사원에 들어갈 때에는 더욱 복장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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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울게 만드는 사원...정말 희한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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