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편지와그림들1916-1956
이지혜
"돈 걱정 때문에 너무 노심하다가 소중한 마음을 흐리게 하지 맙시다. 돈은 편리한 것이긴 하지만, 돈이 반드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하오. 중요한 건 참 인간성의 일치요. 비록 가난하더라도 절대로 동요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부부의 사랑 그것이오. 서로가 열렬히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면 행복은 우리 네 가족의 것이 아니겠소."<이중섭 저, 이중섭 편지와그림들>
참 아름답고 진리로운 말이다. 하지만 이중섭이 말하는 저 아름다운 말을 마음에 매일 같이 다짐하며 살기엔 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이 만능인 시대로 이미 발전해 있고 매일 같이 물질만능시대 그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하여 '돈'에는 편리함은 물론이거니와 권력과 모든 것을 통달하는 힘이 얹어져 있다. 작은 예로 '패션의 완성은 월.급' 이라는 말처럼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그야말로 '웃픈' 이야기다. 이렇게 사회는 이런 웃픈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밖에 없게끔 돈의 존재성이 확고해지고 있다.
이중섭의 말, 아름답기는 하지만물론 돈에서 자유로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상 사회는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또 우리를 그렇게 살 수 없게끔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카드 막음으로 이미 써버린 나의 꾸밈비가 아깝다는 생각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뿐이었다. 나를 화나게 한 것은 그가 써버린 꾸밈비 얼마가 아니라 나의 말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태도였다.
그 당시 그의 행패(?)를 시어머니께 알리고자 했으나 그리 득 될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에 어머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다만 친정 엄마에게 알리고 친정 엄마로부터 모든 공감을 얻은 위로로 조금의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대화가 안 된다고 해서, 내 돈을 몽땅 써버렸다는 것이 그와의 결혼을 깨트릴 이유가 될 수 없지 않은가. 결혼은 일단 했으면 잘 살아 보려고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그 최대한의 노력으로 그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서 가슴을 치며 화를 낼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의 실마리를 잡기로 했다.
'우리' 수중에 들어온 돈은 너, 나, 목적 구분 없이 '우리 돈'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과, 결혼을 했다 해도 목적이 있는 돈이면 목적에 맞게 쓰여져야 하고 목적에 맞게 주인 구분이 되어야 한다는 나. 이랬기기에 대화가 어렵고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재정, 경제 관념이 다른 사람들이었고, 결혼을 하면서 우리의 수익을 어떻게 관리할지 전혀 얘기가 되지 않았었다. 서로 한 달에 얼마를 벌어오는지 정확한 금액도 몰랐고, 적금은 매달 얼마씩 넣을지, 생활비는 얼마로 충당할 것인지, 신용카드 사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 급할 때 현금화할 수 있는 비상금은 어떻게 마련해 둘 것인지 등. 재정과 관련하여 논의되어야 할 부분들이 무지 많았을 텐데 우리는 어떤 것도 전혀 얘기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그때그때 되는 사람이 돈을 쓰는 꼴이었다. 그러니 그는 나의 꾸밈비로 카드막음을 하고도 당당했고, 화를 내는 나에게 당혹스러움을 느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