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기념관의 전시실 전경. 너무나 소박하고 아담했다. 물품 중에는 장기보존을 위해 사진으로 대체된 것도 있다.
김병현
얼마 전 사진집에 관한 기사를 하나 썼습니다.(
관련기사: 이 한 장의 사진이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진집은 양장본에 코팅지가 사용돼 꽤 무겁습니다. 물리적인 무게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 속에서 사진의 가치는 더욱 큽니다. 다행히 많은 분이 읽고 공감해 주셨습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제가 느꼈던 그 뜨거움을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기사는 사진집 출판기념회에 중심이 맞춰 있지만, 사실 거기 방문하기 전 들른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 신촌에 있는 '이한열기념관'입니다. 그곳이 자꾸 눈에 밟히더군요.
너무 소박한 이한열 기념관... 괜찮을까요?알고 계셨나요? 창피하지만 저도 몰랐습니다. 기사를 쓰면서 알게 됐지요. 민주화에 몸 바친 열사 중 처음 생긴, 그리고 아직도 유일한 기념관입니다. 신촌사거리 그랜드 마트 뒤편 골목길에 있는 4층의 작은 건물입니다.
"너무, 너무나 소박하네…."기념관을 둘러보고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되더군요.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권리'를 선물해 주고 떠난 이가 이런 대우를 받다니요. 건물은 너무나 아담했고 전시실은 너무나 소박했습니다. 너무나요. 가벼운 마음으로 들렸던 곳에서 큰 울림을 느꼈습니다.
좀 더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3년 전 기사가 있더군요. 한 달에 5명이 찾는다고요. 기념관에 다시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상황은 생각보다 더욱 열악했습니다. 최초 설립 시에는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씨가 사비를 털었습니다. 국가에게 받은 배상금으로 신촌에 주택을 구입했고, 2004년 모금을 통해 지어졌습니다. 어머니는 기념관이 설립될 당시, 벽면에 이렇게 썼습니다.
장하다. 미운오리새끼.이럴 수가 있느냐.이한열.네 모습이 보고 싶구나.엄마가.어머니는 아들이 다 이루지 못한 뜻을 잇기 위해 오늘도 싸웁니다. 여전히 민주와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젊은이들도 하기 어려운 활동이지요. 의문사 진상규명 촉구 농성장, 촛불집회, 철거민들의 시위, 용산참사 현장... 집보다는 투쟁의 현장에 오래 서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한열 기념사업회'란 사단법인으로 전환돼 있습니다. 법인이 됐지만 여전히 서울시나 국가에게 후원을 받지 못합니다.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마포구는 '구민이 참가하거나 구민을 위한' 단체들 위주로 보조금을 지원합니다. 그래서 보조금을을 신청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순수하게 건물 임대료와 후원으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기념관의 2층에는 <고발뉴스>가 입주해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박물관 등록을 추진중입니다. 박물관으로 등록이 되면 여러 보조금이 나온다고 합니다.
기념관의 문영미 큐레이터는 그래도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이 있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계절 별로 편차가 있으나, 연간 1200명 정도가 찾는다고 합니다. 그 중 절반 가까이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마련한 프로그램 '민주주의야 소풍가자'를 통해 찾는 어린이들입니다. 특히 6월에 가장 많고, 요즘은 조금 뜸한 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