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하천살리기추진단, 10년 쌓은 민관협력 무너져

타지역의 모범에서 '거버넌스 파행' 점입가경 … 인천시, '별 문제 없어'

등록 2013.12.10 16:23수정 2013.12.1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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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규약 개정안 밀어붙이려다 안건 부의조차 못해

다른 지역에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을 만큼 민관 협력의 모범으로 손꼽았던 인천시하천살리기추진단(이하 추진단)의 파행이 지속되고 있다. 발족 10년 만에 거버넌스(governance: 민관 협치) 정신이 급격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추진단은 인천의 하천을 살리기 위해 국내 최초로 행정·시민단체·전문가가 모여 2003년 9월 발족했으며, 이듬해 1월 인천시는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이후 추진단은 굴포천·승기천·장수천·공촌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하는 등, 산업화로 훼손된 도심 하천을 복원하며 거버넌스의 모범으로 꼽혔다. 10년 동안 하천 정비 사업과 수질 개선 사업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다른 시·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그러나 최근 인천시가 추진단의 운영규약 개정을 추진위원들의 의견 수렴조차 없이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민관 협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추진단(민간 단장 안승목 인천경영포럼 회장)은 지난 3일 오전 총회(추진위원 전체회의)를 열어 운영규약 개정안을 통과시키려했다. 그러나 추진위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안건 상정조차 못했고, 개정안은 자동 폐기됐다.

이번 사태는 예견된 일이었다. 운영규약 개정안은 시에서 주도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추진단 집행위원회에서는 승인됐으나, 상당수 추진위원들은 운영규약 개정안이 '민관 협력을 훼손하는 개악안'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개정안 내용을 알게 된 추진위원들은 '총회에 안건을 상정하면 반드시 부결시킬 것'이라는 뜻을 다양한 경로로 시에 전했다. 하지만 시는 무리하게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다 안건 부의조차 못하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이번 일로 10년 동안 쌓아온 민관 협력에 갈등의 골이 깊이 파였다.


민간위원, "관 주도로 변질" VS. 시, '별 문제 없다'는 입장

추진위원들이 민관 협력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추진단의 사무국장(민간)을 없애는 대신 행정팀장(공무원)과 사업팀장(민간)을 둬, 그동안 사무국장이 총괄하던 일을 행정팀장이 맡도록 했다. 직급으로 보면 행정팀장과 사업팀장이 동급이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사업팀장이 행정팀장에게 모든 것을 결재 받는 구조로 돼있다.

둘째는 운영규약에 '인사위원회'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인사위원회는 민간 단장을 포함해 집행위원회에서 추천한 5명으로 구성하게 했다. 추진단의 민간인 채용 인사권은 지금까지 정무부시장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그 권한을 민간 단장에게 주는 셈이다. 운영규약 문구로만 보면 민간의 역할이 강조된 것 같지만, 시민사회는 오히려 행정의 권한을 강화한 것으로 봤다.

이유인즉, 민간 단장과 집행위원이 사실상 시 담당부서 과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인사권을 해당 과장이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관 협력으로 일을 하다보면 민과 행정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이럴 때 가교역할과 정무적 조율이 가능한 정무부시장이 지금처럼 인사권을 지니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추진단의 예산안 작성 과정에서 파행이다. 예산편성권이 최종적으로 행정에 있지만, 추진단은 10년 동안 차기년도 예산을 편성할 때 내부 의견수렴을 거쳤다. 그러나 올해엔 2014년도 예산을 편성하면서 어떤 의견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심지어 시는 민간 단장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예산안을 작성해 추진위원들의 반발을 샀다.

한 민간추진위원은 "인천의 대표적 민관 협력 사업이 관 주도 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다. 특히, 예산을 행정이 일방적으로 수립하고 집행하면서 민관 협력이라는 본래의 목적 달성이 더욱 어렵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시는 사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으며,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예산안 작성 과정에서 의견수렴이 없었던 것에 대해, 시 하천보전수질과는 "몰랐던 일이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했다.

운영규약 개정에 대해서는 "사업 계획과 예산 집행을 분리하는 것이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으며 지난번에 이런 문제가 지적돼 집행위원회가 운영규약을 바꾸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총회, 집행위 위임' 민·관 해석 달라

추진단에서 민간과 행정 사이의 갈등은 지난 3일 열린 추진단 총회 결정에 대한 유권해석을 놓고 더욱 깊어지고 있다.

시는 총회가 '운영규약 개정안을 추진단 집행위원회로 위임한 것'으로 해석하는 반면, 총회 당일 개정안 부결을 주도했던 민간 위원들은 '새로운 개정안을 만들어 총회에 제출하는 것을 집행위원회로 위임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2003년부터 추진단의 자문위원과 추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성환 동부엔지니어링 전무는 "민관 협력 사업은 관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민이 주도하는 사업이다. 세계적으로 지구환경이 위기다. 시민들이 지구환경의 실태를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해 실천방안을 만들어 직접 나서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민이 주도하고 관은 뒤에서 지원하면 된다. 이는 세계적인 경향이다. 관 주도 사업으로 갈 경우 뭘 자꾸 짓는 사업으로 가게 된다"며 "운영규약 개정안도 문제였지만, 이번 총회를 소집하기 전까지 운영규약 개정에 대해 단 한 번의 의견수렴 과정이 없었다. 집행위원회가 개정안을 다시 만들어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사인천>은 추진단 총회가 집행위원회에 위임하기로 한 것에 대해 시 환경녹지국과 하천보전수질과, 안승목 민간 단장에게 수차례 해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다만, 시 환경녹지국에서 파견된 추진단 행정팀장은 "추진단 총회에서 운영규약 개정안을 집행위원회로 위임했다"고 말했다. 이에 <시사인천>이 '집행위원회가 개정안을 다시 작성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 개정안을 심의하는 것인지'를 묻자, 행정팀장은 "당일 총회에 참석한 추진위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집행위원회로 위임한 것"이라고만 말했다.

'당시 추진위원들의 의견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묻자, 행정팀장은 "기억이 나지 않아 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오는 18일 열릴 예정인 추진단 집행위원회에서 운영규약 개정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총회에 참석했던 안병배(민주당, 중구1) 인천시의회 의원은 "운영규약 (개정안)을 보니 관 주도 사업으로 변질됐다. 행정팀장이 사업팀장 위에 있다. 시에서는 기존 사무국장과 불협화음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 순 없다"며 "민관 협력을 복원하려면 사무국장 제도로 복원해야한다. 또, 시는 자문기구에 사무국을 둘 수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조례를 개정해 추진단을 실천기구로 전환해 사무국장을 두게 하겠다"고 말했다,

18일 열릴 예정인 집행위원회가 개정안을 수정해 총회에 제출하는 결정을 내릴지, 아니면 기존 개정안을 심의할 것인지에 따라 추진단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안승목 4기 민간 단장의 임기는 올해가 마지막이다. 5기 민간 단장은 내년 1월에 열릴 정기총회에서 선출될 예정이다. 추진위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후임 단장은 경영인이 아닌 환경전문가가 맡아야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천시 #인천하천살리기추진단 #민관협력 #거버넌스 #하천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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