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 정전사태가 발생한 지난 2011년 9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중앙급전실에서 직원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공무원 개인은 명예를 회복했지만 정부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덕분에 국민은 2년 전 9·15 순환 정전사태의 실체적 진실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지난 2011년 9월 15일 오후 국내 예비전력이 부족해 전국적으로 일부 지역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사태 책임을 지고 징계를 받았던 한 공무원이 2년여 만에 명예를 되찾았다.
"전력거래소 '허수예비력' 은폐 탓... 공무원 개인 책임 아냐"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심준보 부장판사)는 지난 11월 28일 김아무개(46) 당시 지식경제부 전력산업과장이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제기한 견책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손을 들어줬다. '허수예비력'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해 정전 당시 상황을 상관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징계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한국전력거래소가 10년 넘게 '허수예비력'을 은폐해온 사실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전력거래소는 국내 전력생산량과 전력수요량을 실시간 집계해 그 차이를 '예비력'으로 표시하는데, 그 예비력 안에 즉시 가동할 수 없는 '허수' 발전기 용량까지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정전사태 당시에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나 한국전력에 설치된 전력수급모니터에 표시된 예비력에 포함된 허수예비력이 약 300만kW(킬로와트)에 달해 상황 파악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로 전력거래소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9·15 정전사태가 발생했다는 국회 입법조사처와 전정희 민주당 의원 주장에 더 힘이 실리게 됐다. 전정희 의원은 지난해 6월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를 토대로 전력거래소가 EMS를 활용해 자동급전하지 않고, 허수가 많은 공급예비력을 형식적으로 모니터에 표시하면서 수동 급전해오다 정전사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올해 초 EMS 현장 조사까지 벌였지만 전력거래소는 시스템 운용에 문제가 없다고 맞서왔다.
전력거래소 조직적 은폐로 9·15 정전사태 자초 이번 판결문을 토대로 9·15 정전사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늦더위가 한풀 꺾인 줄 알았던 지난 2011년 9월 15일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 이상 오르며 전력수요가 갑자기 늘었다. 당시 기상청에서 이날 최고기온을 섭씨 33도로 예상했는데도 거래소가 당일 최고온도를 섭씨 28도로 적용해 당일 최대전력수요를 6400만kW로 과소 추정한 게 화근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전력수요가 이미 6400만kW를 넘어섰고 오후 1시 이후 운영예비력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전력거래소는 운영예비력이 400만kW 아래로 떨어지면 경보를 발령하는데, 이날 오후 1시 5분쯤 운영예비력이 400만kW 이하(관심 단계)로 떨어진 데 이어 1시 10분쯤 300만kW 이하(주의 단계), 1시 25분쯤 200만kW 이하(경계 단계), 1시 35분쯤 100만kW 이하(심각 단계)로 급락했다. 최고 단계에 이르는데 고작 30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1시간 뒤인 오후 2시 35분쯤에서는 50만kW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전력거래소는 평소처럼 오후 2시 30분 이후 기온이 내려가 전력수요가 줄어들 걸로 보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2시 1분쯤 한전을 통해 미리 계약을 맺은 수용가에게 자율적으로 전력 소비를 줄이게 하는 '자율 절전'과 계약 수용가의 전력 공급을 직접 줄이는 '직접부하제어' 조치를 취하게 한 것 정도가 전부였다.
이날은 오후 2시 30분 이후에도 전력수요가 계속 늘었고 오후 4시쯤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오후 1시 55분쯤 지역 민원으로 충주수력발전소가 가동을 정지한 데 이어 오후 2시 35분쯤 보령 복합화력발전소 제3발전기가 고장으로 멈췄고, 전력사용 피크시간대에만 가동하는 전국 5개 양수발전소가 오후 3시 25분쯤부터 저수량 고갈로 멈추는 등 악재가 겹쳤다.
전력거래소는 이날 오후 1시 20분쯤 관심 단계 경보를 발령한 데 이어 오후 2시 20분쯤 심각 단계 경보를 뒤늦게 발령했지만, 정작 지식경제부에는 사전은 물론 사후에도 이를 보고하지 않아 화를 키웠다.
모니터에는 300만kW 남았는데... 실제 예비력은 고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