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큰 집에서. 열심히 청첩장 봉투에 넣는 중. 엄마와 큰 엄마가 작성한 하객 리스트가 보인다.
홍현진
그렇게 나온 청첩장을 추석 때 들고 갔다. 기차 안에서도 '너무 튀나', '너무 알록달록한가' 내심 걱정했는데 어른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엄마도, 아빠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청첩장"이라며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고등학생 사촌동생도 "귀엽다"며 좋아했다.
청첩장이 나오자, 진짜 고민이 시작됐다. 청첩장을 어디까지 돌릴 것인가. 결혼식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후, 나는 줄곧 '작은 결혼식'이 하고 싶었다. 정말 가까운 가족, 친지들만 초대해서,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고. 하지만 그런 식의 하우스 웨딩은 오히려 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
일반 예식장이 아닌 공공기관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3월에 결혼식장을 잡을 때까지만 해도 예상 하객은 200명이었다. 뷔페 수용인원도 그 정도였다. 상견례 때 이 점을 이야기했고, 양가 부모님 모두 "우리는 식구가 별로 없다"며, 각각 50명씩만 초대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큰집에 가서 예상 하객 리스트를 주욱 뽑아보는데 70명 가까이 됐다. 하긴 아빠가 8남매, 엄마가 4남매니까, 아무리 부산에서 간다고 해도 애초부터 50명은 '미션 임파서블'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리스트를 적어나가는 엄마와 큰 엄마 옆에서 "부를 사람만 불러", "엄마 직장 아줌마들은 왜 가는 건데", "이 사람은 누군데, 본 적도 없는데"... 라며 닦달을 했다. 엄마는 "정작 오는 사람은 얼마 안 될 것"이라며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곰씨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가족들과 영화 <관상>을 보고 나오는데 곰씨에게 전화가 왔다. 온가족이 함께 보러 간 영화인데 초반에는 재밌던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지지부진하게 늘어져 살짝 짜증이 나있던 참이었다.
"우리는 최대 100명 정도 올 것 같은데." 나는 언성이 높아졌다.
"이제 와서 결혼식장을 바꿀 수도 없는 거고. 밥 모자라면 어떻게 할 거야."문제는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곰씨와 나, 둘 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니, 누구에게는 청첩장을 주고 누구에게는 청첩장을 안 줄 수는 없었다. 그 이외에 일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은 어쩌지.
"결혼식 때도 안 부르면 그 관계는 정말 끝이야" 친구들은 더 걱정이었다. 한 때는 친했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몇 년 동안 얼굴 본 적 없는 친구들…. 몇 년 간 연락 안 하고 지내다가 '나 결혼해'라며 뜬금없이 연락하는 건 정말 싫은데. 게다가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부산에 있으니 결혼식 때문에 서울까지 와달라고 하기도 미안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지난해 4월 결혼한 친구가 말했다.
"일단 부르기는 다 불러. 나도 결혼식 때 '뻘쭘하다'는 이유로 친구들 많이 안 불렀는데 서운해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반대로 나도 그런 이유로 초대 못 받아서 서운한 적도 있었고." 그 친구가 했던 진짜 '무서운 말'은 이거였다.
"몇 년 동안 연락 안 했던 친구들도 결혼식 계기로 다시 인연을 이어갈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결혼식 때도 안 부르면 그 관계는 정말 끝이라고 보면 되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냥 남들처럼 일반 예식장에서 했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어쨌든 결혼식은 해야 하니까,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먼저 청첩장은 '가까운 이들에게 돌리되, '좋은 날'에 마음 상하는 일이 없도록 유연하게'라는 기준을 세웠다. 피로연 업체 측에 음식을 좀 더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결혼식장 근처에 따로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빌리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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