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임무유공자회 통합진보당사앞 시위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국정원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통합진보당사앞에서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회원들이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권우성
이승만 정권 시절 한국전쟁 중 억울하게 죽은 수십만의 보도연맹원들에게도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이 씌워졌다. 평화통일을 주장했다고 공산주의자 혐의가 씌워진 진보당 조봉암 당수와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4·19 때는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민주주의를 요구한 학생과 시민들도 모두 공산당의 사주를 받은 불순분자들로 조작되었다.
군사독재시절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공산주의자 또는 공산주의 결탁 세력으로 조작되어 고초를 겪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부들이 간첩으로, 민주화를 요구한 학생들이 공산주의자로 조작되었다. 법이 보장한 노조를 만들고, 8시간노동제와 최저임금을 요구한 노동자들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한 것이 군사독재정권이었다.
심지어는 이 공산주의 망령은 사립학교 비리를 없애자는 사립학교법 개정운동도 학교공산화 음모로 색칠을 했고, 학교에서 아이들 밥 한끼 공짜로 먹이자는 무상급식 운동도 좌익세력의 국가전복 음모로 공격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가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와 종북 노이로제이고, 이를 확대재생산한 것이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이다. 군사독재 정권은 자유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는 거짓말로 레드 콤플렉스를 조작, 강화해온 것이다.
인류 최악의 독재정권인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법과 질서를 내세우며 가장 먼저 탄압한 것이 공산주의자였다. 미국에서 흑백차별 철폐운동을 펼친 마틴 루터킹 목사와 이 운동에 대해 미국 보수세력과 주류 백인들은 공산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와 결탁해 방화와 폭동을 일삼는 불순세력으로 공격했다.
찰리 채플린 같은 예술가들, 오펜하이머 같은 과학자들까지도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여 탄압했던 매카시즘이 미국 사회를 얼마나 공포에 몰아넣었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얼마나 정체시켰는지 인류는 똑똑히 목격했다. 그 20세기 망령이 21세기 한국에서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셈이다.
비밀권력 국정원과 민주주의, 공존할 수 없다국정원은 불법 대선 개입 댓글 사건으로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여당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도 말로는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잘못한 것이 없다는 국정원에게 스스로 개혁을 하라고 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까운 일이지만 국정원 개혁은 시대적 요구다.
대한민국의 국정원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국내파트와 국외파트, 정보수집과 수사권, 나아가 대공업무뿐 아니라 국내정치부분까지 간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정치파트의 해체, 국내파트와 국외파트의 분리, 정보수집과 수사권의 분리(수사권 박탈)등이 될 것으로 이야기가 나왔었다.
내란음모예비죄가 그 시기와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0년만에 부활한 내란죄 수사는 국정원이 대북 정보수집과 수사권의 유지 필요성을 보여줘 현재 진행 중인 국정원 개혁 논의를 되돌리기 위한 기획이라는 의심이다.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이 트위터에 "타이밍이 정치개입이다.... 국정원이 수사권 떼내지 말라고 존재증명하며 시위하는 거다. 조직안보와 국면전환을 위한 승부수!"라고 국정원의 승부수를 비판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의 존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는 1924년부터 1972년 죽을 때까지, 30대 캘빈 쿨리지부터 37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8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48년 동안 FBI(연방수사국)의 수장이었다. 지금도 워싱턴DC의 FBI 본부 빌딩 이름이 후버 빌딩이다.
그는 헬렌 켈러, 마틴 루터 킹 목사, 존 스타인벡, 아인슈타인, 찰리 채플린 등을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 인물로 분류해 그들에 대한 정보 파일을 만들어 관리했고, 케네디 암살 사건과 마를린 먼로 자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정보를 독점해 FBI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고 종신 국장을 했지만, 사후 연방수사국의 수사권 남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비난을 받았다.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 중 한 사람이었던 후버 국장에 대해서 당시에는 감히 누구도 비판할 수 없었고, 그의 경질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정보독점과 수사권이라는 막강한 권력 때문이었다. 그가 죽은 후에야 FBI 국장 임기는 10년을 넘지 못한다는 법이 만들어졌다.
독점은 독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역사 속에서도 독재정권은 언제나 정보를 독점하는 것을 최고의 무기로 악용해왔다. 모든 독재정권의 배후에는 언제나 비밀경찰 또는 비밀정보조직이 있었다. 나치 히틀러 시대의 게슈타포와 스탈린 치하의 KGB가 대표적인 경우다.
유신시절의 중앙정보부로부터 5공 군사정권의 안전기획부를 거쳐 현재의 국정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용공조작사건에 대해서 국정원은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다. 최근 서울시 탈북공무원 간첩사건도 무죄판결을 받았고, 친북의식화 교육지침서로 논란이 됐던 전교조 소속 교사 사건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들은 어떤 사과나 반성도 하지 않았다.
모든 정보를 가지고, 모든 분야에 관여할 수 있고, 수사권까지 가진 비밀정보기관은 무소불위의 권력일 수밖에 없다. 이런 무소불위 비밀권력을 두고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게슈타포와 KGB를 그대로 두고 인권을 논하는 것과 같다. 현재의 정보수집권과 수사권, 국내파트와 국외파트, 공안업무와 정치업무까지 맡고 있는 대한민국 국정원과 민주주의는 공존하기 어렵다. 국정원 대선개입과 내란음모예비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마르틴 니묄러 신부가 생각나는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