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국정원의 날조 조작사건" 목소리 높이는 이석기 의원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 참석한 뒤 회의실을 나오고 있다. 이 의원은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한마디로 황당하다. 이건 국정원의 날조 조작사건이라고 본다"며 총기 준비, 통신 철도 유류저장고 등 파괴 계획 등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 "철저한 모략극이고 날조극이다"라고 주장했다.
권우성
"그냥 국가보안법 정도로 엮었다면 고개를 끄떡였을 텐데, 내란음모죄로 엮었다고 하는 순간, 젊은 기자들도 푹푹 웃음이 나왔다는 거야. 국정원이 자기 살자고 오버하는 거 아니냐는 거지. 이게 지금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정확한 시각 아닐까."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지난 28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의 간담회에 참석한 젊은 기자들의 정치수다를 이렇게 스케치해주었습니다. 이틀째 국정원이 보수언론과 종합편성채널에 흘리는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이석기 의원 관련 피의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한편으로는 진짜? 당황하게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설마…하며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동아일보>가 29일 국정원을 인용해 단독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석기 진보당 의원이 이끄는 옛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조직원 130여 명은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혁명조직)'라는 이름의 단체를 결성, 북한의 침범 때 북한군을 돕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계획했다는 겁니다.
이어 "RO(혁명조직)는 남북간 전쟁이 벌어질 경우 KT혜화지사와 분당인터넷데이터센터(IDC) 등 대규모 국가 통신시설을 파괴하고 군수물자 이동과 민간인 이동을 차단, 지연시키기 위해 경부선 호남선 등 주요 철도 시설을 파괴할 계획"도 세웠고, "경기 평택물류기지도 타격 대상에 포함됐는데, 이 평택물류기지는 정유사나 수입사 외에도 SK가스, 석유공사 비축기지 등이 입주한 국가 기간시설로서 수도권에 석유, 가스를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전쟁 발발 시 북한군의 공격을 돕기 위해 전국의 미군기지 위치와 규모 등 현황 파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체 회의에서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국정원과 검찰은 이 의원이 RO 조직원들에게 국가 기간시설 파괴에 필요한 사제 총기 제작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혐의도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의원과 조직원들은 전체 회의 때마다 북한의 군가이자 혁명가요로 알려진 '적기가'를 제창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썼습니다.
이 보도를 그저 머릿속 그림으로 상상해 보면 블록버스터급 영화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총기 소유가 금지된 우리나라에서 이들은 총기를 얻기 위해 인근 파출소 지구대를 타격, 총기를 탈취한 뒤 그것으로 무장혁명을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 같습니다.
국정원이 '관계자' 전언으로 피의사실 흘리는 까닭 정치권은 지난 이틀간 국정원이 보수언론에 흘린 정보가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지금까지 나온 혐의내용이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며 "또 하나의 국기문란사건으로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지금 벌어진 이 사안 자체의 중대성보다 이 사건이 몰고 올 정치적 파장에 훨씬 긴장하는 눈치입니다. 국정원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보수언론과 종편을 통해 끊임없이 '관계자' 전언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흘릴 것이고, 그 흘려진 정보는 매일 아침 신문과 방송 매체를 타고 전국을 유람할 게 뻔하다는 것이지요. 정국이 이렇게 흘러가면 다른 의제와 쟁점은 모조리 사라지고 오로지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 관계자들이 내란음모를 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이것만 머릿속에 꽂히게 된다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정치권은 지금까지 나온 건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날마다 수위를 높여가면서 진위 여부를 떠나 국민들의 입이 쫙 벌어질 정도의 충격적인 내용을 내놓고 정국을 휘감아 칠 것이다, 라는 거죠. 정치권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내란음모 블랙홀'이 정치권의 모든 뉴스를 빨아들여 그간 주요의제로 다뤄졌던 국정원 개혁이나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 박근혜 대통령 사과 등 이른바 지난 대선에서 벌어졌던 국정원의 불법적인 선거개입 문제가 수면 아래로 아예 '수장'될 수 있다는 걱정입니다. 물론 21세기 대명천지에 과거 유신정권, 군사독재정권에나 있었던 수법을 쓰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국정원이 어떤 괴물을 만들어낼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우려이기도 하지요.
국민 51% "국정원이 대선개입"... 선거법 무죄 '증거찾기' 나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