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민보고 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공식 제안하고 있다.
남소연
"아니, 2인분 시켰는데 왜 5인분이 나와?"민병두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의 말입니다. 지난 3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영수회담을 제안하자 그걸 받아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3자회동을, 6일엔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이 나서 5자회동을 제안했습니다. 점점 인원이 불어난 회동을 하게 되자 민주당 지도부 핵심 전략가인 민병두 본부장은 내심 불쾌한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둘이 만나자고 했더니 다섯이 만나자고? 뭥미?'하는 심정일까요?
김한길 대표는 지난 3일 비장한 각오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담판을 제의했습니다. 지난 대선 국정원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라도 현직 대통령은 야당 대표와 만나야 하고, 일명 '남해박사(남재준 해임, 박근혜 사과)'와 국정원 개혁까지 허심탄회하게 얘기 좀 해보자는 것이었지요.
5자회동으로 변신한 영수회담... 야당 무시 전략?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2인자가 된 김기춘 비서실장을 내세워 김한길 대표의 제안을 '뭉갰습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회동은 원내 현안이 있어 만나자는 것이니, 또 그 현안은 국회에서 많이 다뤄지는 내용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모시고 현안을 논의하자는 의미가 크다는 겁니다.
이같은 해석은 지난주 "참을 만큼 참았다"며 장외로 뛰쳐 나온 민주당과 김한길 지도부의 긴급한 실천을 별거 아닌 일로, 특히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을 '원내 현안 중 하나'로 치부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동시에 김한길 대표가 던진 담판 제의를 굉장히 축소해석하는 태도이기도 하지요.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양자회동으로 속깊은 얘기를 들어보자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런데 돌고 돌아 청와대가 다섯이 만나자고 역제의를 한 것은 일단 이 논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빠지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청와대가 마련한 자리지만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를 두고 여야는 옥신각신 대립하게 돼 있고 그 싸움이 예상되는 테이블에서 황우여 대표와 김한길 대표가 각각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가 심판을 내리는 판관 노릇을 하겠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과 관련해 아는 바 없고 국정원으로부터 신세를 진 적도 없으며 고로 이 일은 국회가 알아서 처리할 문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편 이날 브리핑에서 놀라웠던 것은 김기춘 실장의 이날 긴급브리핑 서두였습니다. 김 실장은 이날 브리핑을 시작하면서 "윗분의 뜻을 받들어 비서실장이 한 가지 발표를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MB정권에서조차 이 같은 극존칭은 없었습니다. 김 실장의 이 같은 '극존칭 화법'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김 실장이 이보다 더 강도를 높인다면 이미 사라진, 과거 70~80년대 대통령에게 썼던 용어 '각하'를 쓰겠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극존칭의 대상인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가 한 자리에 모인다면 그 자리에서 무슨 대화가 어떻게 오갈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 친노 핵심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왜 지금 5자회동을 제안했겠냐"라며 "이건 완전히 야당 무시 전략인데, 그림은 뻔한 것이다, 4명의 정당 실무자들 불러놓고 여왕께서 훈계하고 꿀밤 한 대씩 때리겠다는 것과 같다"고 개탄했습니다.
정호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제1야당 대표가 제안한 대로 일대일 영수회담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인식을 확인하고 구체적 해법을 논의해야 한다"며 "국정과 민생 안정을 위한 목적이라면 어떤 형식의 대화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가 (사안의) 심각성과 해결책에 대해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지요.
청와대 가서 사진만 찍고 말 거라면... 깊어지는 민주당의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