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터널이 만들어진 안양천의 자전거길. 우리가 지나온 길 중에서 가장 멋진 곳이었다.
최예용
수원 초입에서 안양천 자전거길이 끊어져 잠시 찻길로 나갔다가 다시 자전거길을 찾아 들어왔다. 한참을 달리다 수원역으로 향하는 1번 국도를 탔다. 그리고 20여 분을 달리니 수원역. 시계 바늘은 오후 5시를 향하고 있었다.
네이버 자전거길 안내에 따르면 CJ제일제당 인천1공장에서부터 수원역까지는 50.12km. 소요시간은 3시간 21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5시간 정도를 달렸다. 우리는 네이버가 측정한 속도보다 정확하게 1/3 느렸다.
아산까지는 아직도 멀고도 멀었다. 힘이 빠졌다. 오른발 앞쪽이 약간씩 무뎌지는 느낌. 근육에 쥐가 날 전조라고나 할가. SOS 자전거 캠페인 출발 전 광화문에서 인천까지 연습삼아 달렸을 때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왼쪽 허벅지에 쥐가 난 적이 있었다. 근육통이 사라질 때까지 며칠 걸렸다. 출발 당일까지 근육통이 머물까봐 약을 사먹기도 하고, 근육에 좋다는 약을 바르기도 했다. 앞으로 2주일 동안 자전거를 타야 하는데 어쩌냐며 걱정하니 약사가 예방약도 있다며 약을 권했고, 나는 주저없이 돈을 지불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빼먹지 않고 챙겨 먹었다.
수원역사 한쪽에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였다. 주저없이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가 팥빙수를 주문했다. 시원한 팥빙수를 먹으며 생각했다. '이대로는 아산은커녕 천안까지도 어렵다.' 수원역서 천안역까지는 오산과 평택을 지나 무려 57km 약 4시간 거리, 야간에 자전거를 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무엇보다 14일 오전 7시에 아산에서 서태안환경연합의 회원들과 결합하기로 했다. 어쩔 것이냐. 방법은 하나다. '축지법'을 쓰는 거다. 비장의 무기다. 양심을 걸고 말하지만 이 무기는 처음부터 준비했던 게 아니다. 상황이 벌어지니 떠오른 방법이다.
결국 나의 잘못이지만 인천에서 10시 반에 기자회견하고 11시에 출발, 아산까지 120km를 간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작전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했더라도 어려운 이야기였다. 도상으로 100km 이상 가겠다고 계획을 짠 게 누구더라? 바로 나다. 하기사 지도상으로는 하루에 100km가 아니라 200km인들 못가랴. 평소에 기껏해야 반나절 정도 주말에 자전거를 타봤고 편도 45분 정도 걸리는 자전거 출·퇴근을 해본 주제에 전국 1200km 2주 안에 돌겠다고 나섰으니…. 동행자 영환에게 물었다.
"어쩔텨?""난 이대로는 30km도 못 가!"내 입장이 단호하니 영환이 별 수 있나…. 우리는 수원역으로 올라가 장항선 표를 두 장 샀다. 5시 46분에 출발한 장항선 무궁화호는 엄청난(?) 속도로 무려 45분이나 달려서 아산에 도착했다. 차장으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도로들이 무진장 길었다.
'우와, 저 길을 자전거로 이 시간에 이 상태로? 미쳤지 미쳤어.'자전거로 1200km를 가겠다는 원칙이 조금 훼손됐지만, 미련은 없었다. 그저 멍한 눈으로 기차 밖으로 휙휙 지나는 길들을 멍하니 바라볼 뿐. 여기서 한 가지, 수원역으로 올라가기 전 영환이 말했다.
"세상이 무서워서 우리가 이대로 기차를 탄다면 사람들이 사진 찍어 인터넷에 올릴지 몰라요. 그러면 자전거로 전국 돈다고 해놓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어쩌죠?""어쩌긴, 당장 깃발 떼고 겉옷 입어 캠페인 티셔츠를 감춰야지."우리는 그랬다. 포기하지 않기 위해 그랬다. 일정대로 다음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서 그랬다. 쥐뿔도 없는 주제에 두 가지 사과를 동시에 따먹을 방법은 없었다. 하여 하나의 사과만 취하고 다른 하나는 포기하기로 했다. 취할 사과는 일정대로 목표대로 현장에 도착하여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 포기한 사과는 자전거로만 1200km를 다니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만 이동수단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목표 수정이다. 1200km가 아니라 1000km! 사실 이것도 어려울지 모른다. 미리 밝혀둔다. 그리고 개인적인 사정도 있다. 자전거로 전국을 다니겠다고 하니 애들 엄마가 그랬다. "당신 체력으로? 3일만에 힘들어서 포기할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