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김용주
우리 집 주말 육아는 오롯이 아빠의 몫이다(아내는 아이에게 주중에 충분히 시달렸으므로). 평소와 달리 아이가 짜증을 냈다. 날이 덥긴 했으나 매사에 구시렁거리고 미운 말을 해댔다. 함께 장을 보러 나왔다가 다음부터 이럴 거면 따라 오지 말라고 했다. 그 짜증이 저녁 시간까지 이어졌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에 저녁 밥을 만들어서 아이에게 차려줬더니 점심때 과자를 먹어서 그런지 먹으려 하질 않는다. 끝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내 눈치를 보며 억지로 조금 더 먹었다.
씻기고 재우려는 데 아이가 짜증 내는 수준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어 몸을 만져보니, 열이 심하게 났다. 39도를 훌쩍 넘긴 고열상태. '아…. 얘가 아팠구나.' 밤새도록 해열제를 먹이고 물로 몸을 닦아주면서 아이를 바라본다. "아파서 짜증이 났었구나. 아빠가 미안해"라고 말하는 순간, 내 눈 주위가 화끈거린다. 분노의 주말 육아가 순식간에 심한 죄책감에 빠져들게 한다.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었는데 아이에게 그 분노가 향해 있다가 갑자기 깨달은 내 잘못으로 인한 절망감에, 주말 밤 끝내 멘붕 상태가 되었다.
청년 시절 스스로 가졌던 긍정적인 생각들은 결혼하고 아내와 살면서 한 번 무너지고, 육아하면서 또 한 번 무너진다. 난 살면서 매 순간은 아니지만, 삶의 상당 부분에서 스스로 참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자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아빠 노릇, 아이가 태어나서 장성하기까지 그 아이가 상하지 않고 잘 자라도록 돕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정서적인 것은 고사하고 몸뚱이만이라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지. 특히나 오늘처럼 아픈 아이를 인지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된다.
영화 <비포 미드나잇>에서 셀린느(줄리 델피)와 제시(에단 호크)가 호텔 방에서 육아 이야기를 하며 심하게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제시가 출장을 다니고 외부 활동할 때, 셀린느는 두 쌍둥이를 낳고 어쩔 줄을 몰라하며 불안해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한 아이의 성장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공포, 매 순간 커가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불안해해야 하는 한 엄마의 심리가 잘 드러난 장면이었다.
육아를 전담하는 세상의 많은 엄마들은 오죽할까 싶다. 고로 이 공포를 부모 중 한 사람에게만 짐 지워서는 안 되는 이유가 나름 자명한 셈이다. 하지만 죄책감에 사로잡힌 오늘은 이조차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아이가 커서도 나에게, 적어도 막연한 고마움을 갖는 부모로 남을 수 있을까. 가끔 조바심이 난다. 자신이 없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본 <어른들은 몰라요>가 떠올랐다. 그래, 어른들은 모른다. 일상에 지쳐서 아이들의 세밀한 표현과 손짓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다.
이번 주말처럼 아이의 상태도 모른 채 버릇없이 군다고 호통을 칠 때도 있다. 몸의 질병은 낫더라도 자라서 그런 서운함과 억울함이 아빠를 바라보는 아이의 정서에 어둡게 자리 잡지 않기를 뒤늦게 바라곤 한다. 내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부모에게 존경심을 표하며. 온몸으로 하는 아이의 말을 매 순간 좀 더 귀담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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