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평야를 끼고 있는 고란리 입구에 서있는 석장승. 모양이 제주 돌하르방을 닮았다.
이주빈
그렇게 초목 무성한 섬의 한가운데 고란평야가 자리잡고 있다. 이 땅 모든 평야가 수탈과 항쟁의 역사를 품고 있다. 고란평야도 예외가 아니다. 1925년 10월 7일 '도초 소작인회'를 결성한 농민들은 친일 지주들의 수탈에 맞서 34일간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하의3도(하의·신의·장산), 암태도 소작인들과 함께 벌인 빛나는 항일 소작투쟁이었다.
주민들은 도초도를 '인재의 섬'이라 부른다. 이 은근한 자부심의 바탕엔 출세한 명망가를 많이 배출했다는 우월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도초도는 일제하고 싸운 섬"이라는 한 주민의 말 속에서 은근한 자부심의 바탕을 엿볼 수 있다. 역사 속에서 훼절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았던 당당함이야말로 도초도 주민들이 지닌 자부심의 가장 큰 밑천인 것이다.
고란리 초입엔 석장승 하나가 서 있다. 원래 나무로 만든 장승이었는데 1938년에 석장승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키가 290cm인 이 석장승은 생김새가 제주 돌하르방과 매우 닮았다. 도초도로 이주해 살고 있던 제주도 사람들이 석장승을 만들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머리엔 갓을 쓰고 도포는 하나 걸쳤는데 단정한 모양새는 아니다. 마을 입구에 세웠으니 수상한 외지인들에게 겁이라도 줘야할 판인데 눈은 그런대로 부라리고 있으나 웃니아랫니를 다 드러내놓고 웃는 통에 절로 웃음만 터진다.
섬마을 사람들에게 석장승은 타자를 향한 위협의 상징물이 아니었다. 석장승은 기댈 곳 없는 섬마을 민초들이 의지하는 마을 수호신 가운데 하나였고, 변함없이 친근한 이웃이었으며, 언제고 돌아갈 거처의 표식이었다.
굳이 빠르게 걸을 이유가 없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