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신안군의 랜드마크 구실을 했던 비금도에 있는 신안 대우병원. 병원을 설립했던 대우그룹의 지원은 끊겼지만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주빈
바다에서 거리를 재는 기준은 해리. 1해리는 육지거리로 1852m다. 자동차를 비롯해 여러 가지 속도 빠른 교통수단이 즐비한 육지에서 1852m는 짧은 거리에 든다.
하지만 섬에선 1해리만 벗어나도 바람 세기가 다르고, 섬마다 풍속조차 다른 경우가 많다. 어느 섬에선 초장(草葬) 풍습이 여전한 반면 어느 섬에선 '망자가 환갑이 넘었으면 모두 호상(好喪)'이라며 곡 대신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 보니 '섬은 각각 독립된 우주'라는 말이 절로 생겨났다. 바다의 거리 1해리는 우주의 시간인 억겁과 함께 산다. 해리마다 켜켜이 응축된 억겁의 사연들. 섬은 바다의 사연을 먹고 살고, 바다는 섬의 눈물을 먹고 산다.
한때 신안의 랜드마크 '대우병원', 지금은...비금도는 가장 가까운 육지인 목포에서 약 29해리(약 54km) 떨어져 있다. 섬의 모양이 새가 날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해서 비금도(飛禽島)다.
비금도엔 한때 신안의 랜드마크 같았던 곳이 있었다. 여객선 선착장 옆에 있던 '신안 대우병원'이 바로 그곳. 병원 건물이 오지낙도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이 자랑하는 유일한 근대식 랜드마크였던 것이다.
신안 대우병원은 1979년 3월 17일에 첫 문을 열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이 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취지로 설립했다. 설립 초기 병상의 규모는 20병상. 하루 평균 130명의 낙도 주민들이 병원을 찾았다. 변변한 의료시설이 크게 부족했던 낙도 주민들에게 신안 대우병원은 가장 빨리 찾을 수 있는 병원 그 이상의 의미였다.
하지만 신안 대우병원은 점차 쇠락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그룹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던 대우는 낙도 병원에 대한 투자를 예전처럼 하지 않았다. 설립 초기 27명의 의료진이 낙도 주민을 치료했던 신안 대우병원. 하지만 악화되는 운영난에 1998년엔 스스로 격을 병원에서 의원으로 낮춰보기도 했지만 대우그룹이 지원하는 신안 대우병원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신안 대우병원이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999년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가 위탁운영을 자처하고 나섰다. 2003년 한 개인병원이 뒤를 이어 진료를 이어갔지만 그해 5월 결국 문을 닫았다.
천만다행으로 신안 대우병원은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 의료법인이 지난 2006년 11월부터 하루 약 120명의 낙도 환자를 돌보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낙도 병원이라고 받는 지원은 없다"며 "매년 약 1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섬에서 가장 서러울 때가 아플 때다. 바람 불고 안개 끼면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생목숨이 죽어나가는 곳이 섬이다. 그 설움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닥터 슈바이처'가 아닐까.